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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5.29 ‘바보 노무현’이 88만원 세대에게 남긴 것. 2

어렸을 적 유치원에서 “나는 나는 대통령이 될꺼야.”라고 노래를 부르며, 막연하게 대통령의 꿈을 키우던 아이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대통령의 꿈을 잠시나마 간직했던 그 꼬마들은 이 십 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는 정규직이 될꺼야.”라는 노래를 부른다.

  2009년을 사는 88만원 세대(또는 예비 88만원 세대)들에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꾼다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일 게다. 88만원 세대에게 자신의 소신과 꿈을 토대로 밥벌이를 하겠다는 믿음은 허영에 불과하다. 돈 없고, 빽 없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은 너무도 절실히 느끼지만, 이 불만스러운 세상을 어떤 식으로 바꾸어야 할지, 내가 나선다고 세상이 바뀌기나 할지, 무력감만 밀려올 뿐이다. 그리고 공적으로 불합리한 문제를 각개전투로 해결하려고 한다. 토익점수를 올리거나, 편입을 한다거나, 결코 혼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사적으로 해결하려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무력함만 탓하게 된다.

  고졸 출신의 빈농 아들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꾼 바보가 있었다. 빽도 없고, 정치적 터전도 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소신과 꿈을 토대로 밥벌이에 나선 것이다. 그는 ‘지역 갈등’ ‘양극화’ ‘권위 타파’ 등 사적인 자리에서 오고갔던 세상의 불만들을 대통령직이라는 공적인 직위를 달고 국민들과 함께 해결하려고 했던 한국사회에서 찾아보기 드문 정치인 이었다. 마치 88만원 세대처럼, 기반이 없던 정치무대에서 무력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만한데 그는 소신을 당당히 내세우며, 그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려고 한평생 노력하다 가신 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 공적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권위주의 타파’라하고, 어떤 이들은 ‘서민중심의 정책 수립’이라하고, 또 어떤 이들은 ‘지역주의 개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5월 29일, 고인의 운구가 지나가던 종로거리 일대를 응시하다가 무거운 발걸음을 종로 한 켠의 토익학원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 많은 취업준비생을 만났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학원가에서, 입사지원서를 쓰는 컴퓨터 앞에서 밀려오는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취업 준비를 해야만 하는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노 대통령이 우리 88세대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선물은 소신을 통해 무기력함을 타파하는 법을 알려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전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손으로 노대통령을 뽑았다. 혼자서는 무기력해 보이는 개인이지만, 함께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떠나보낸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고인에 대한 슬픔을 자신에 대한 무기력함을 극복하는 생산적인 에너지로 삼아보면 어떨까. 가끔 세상은 상식을 거스르는 몇 몇 바보들에 의해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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