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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약속, 만남, 여행...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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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가?

"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유를 찾는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
먼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
난 이 사실을 20년 동안 그대의 귀에 대고 속삭여 왔네. 바로 곁에서 말야.
그대가 언제나 자유로운 정신에 머물기를 바라네.
그것 밖에는 다른 해답이 없지.
"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1997, 열림원

2001. 3. 24




시인 류시화는 끊임없이 귓가에 속삭인다. 그대 자유로우라고. 그는 떠남이 자유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기다운 것,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때문에 자신을 알기 위해 간혹 떠나라고 조언하기도 하고, 지금 현재에 충실하하고도 말한다.

류시화 덕분에 인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인도에 다녀왔다. 작은 만남과 우연으로 인도는 내 인생의 키워드 중 하나가 됐다. 인도 그 자체가 무엇이든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인도를 찾는다. 그런 여행은 흔치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몇몇의 친구와 후배들은 류시화를 만나 인도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인도를 만나고 나 자신을 만났듯이 그들도 만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다.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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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의 마지막 날, 나는 무덤덤했다.
결혼에, 회사를 오고가던 나날들 속에 나의 20대 마지막 달, 마지막 주, 마지막 하루가 소리소문 없이 쓰윽 지나갔다. 그 후로 별거 아니라고 별 일 없었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내왔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알 수없는 허전함과 상실감이 있다. 내 안에.

오늘 같이 생각없이 내 이야기를 마구 끄적일 수 있는 밤은 많지 않다. 이 짧은 시간을 빌어 두서없지만 내 20대에 마지막 편지를 보낼까 한다. 나의 20대를 수놓았던 파편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어 보며...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느니
사랑을 하고 잃은 것은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 낫다
- 테니슨

20대 내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 건 테니슨이 아니었을까. 20대, 후회없이 사랑했다. 잠시나마 신마저도 사랑해보려 했었다. 사랑에 뛰어 들고, 잃고, 그래도 다시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 인생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로 변했다. 50대 50이라면 주저할 필요없다. 일단 두드리는 거다.  


사람들한테 칭찬받지 못한 대도 상관없어!
언제든 웃을 수 있는 강인함을 잊지 말거라
- One Piece #9

군생활엔 원칙이 필요했다. 나의 원칙만을 고집할 수 없는 그곳, 타인의 실수까지 나의 책임이 되는 그곳에서 나는 나 스스로 당당할 수 있어야 했다. 죽을 잘못을 한 것이 아니라면 뭐든. 이때 원피스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내 20대의 수많은 선택과 결과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무엇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
'무엇인가를 이룩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라
- 아난 (태국 前총리)

내 첫 유서는 무릎 수술로 2달간 입원해 있었던 21살에 쓰여졌다. 그 때 우연히 TV를 통해 들었던 아난 前총리의 인생관은 나를 송두리채 뒤바꿔 놓았다. 난 욕심이 많다. 하지만 내 인생 진로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순간이면 늘 나는 아난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과거를 되살리지 않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현재를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 냉정과 열정사이 (츠지 히토나리)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내게도 후회라는게 찾아왔다. 내 이기적인 선택은 나는 물론, 내 주위의 사람들도 많이 아프게 했다. 그 때는 4계절이 모두 가을 같았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내게 현재의 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었다.


눈물로 씻은 눈만이 세상을 볼 수 있다.
- 나는 희망의 증거다 (서진규)

자원봉사는 내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다. 사회인이랍시고 자원봉사와는 담을 쌓고 지낸지도 오래지만, 자원봉사는 내가 사회와 관계를 맺는 나만의 방식이다. 20대 자원봉사는 육체노동이 거의 전부였지만 30대는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돌아감을 곧음으로 여기고, 근심을 이득으로 삼는다.
- 손자

하나 같이 안풀리던 시절도 있었다. 어차피 취업도 잘 되지 않았던 나는 마침 배워온 전공 속의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었다. 그렇게 가볍게 저질렀던 사건이 내 인생에 특별한 만남을 선물했다.


한 번쯤은 네가 쌓아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대라는 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리셋할 수 있다는 것을. 우여곡절도 많았고, 작심삼일 투성이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큰 뜻이 없었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좌충우돌했던 20대 덕분에 이렇게 많은 든든한 조언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개의 인생 키워드도 어렴풋하게나마 조금 알 게 되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땅
흰 얼음산은 바다로 무너져 내리고
자연의 소리만이 대지를 채우는 곳
밤에는 별이 너무 많아
목이 아파 그 숫자를 셀 수도 없는 곳
그런 곳을 상상해 보자

....

그런 곳을 상상해 보자
너무도 넓고 너무도 순수한 곳
공기가 너무 맑아 숨쉬기조차 벅찬 곳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대지
하얗게 빛나는 밤
우리 그런 곳을 상상해보자
- 누구의 것도 아닌 땅 (캐롤 포먼)


늘 여행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다...)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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