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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창의성 전문가 켄 로빈슨(Ken Robinson)의 TED 강연을 들었습니다. 주제는 '교육 혁명의 필요성'이었으며, 요지는 학교 교육이 아이들에게 내재하고 있는 창의성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어가 짧아 100%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중에서 특히 "Life is not linear, it is organic"이란 구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취업 카페에서 노교수 일화가 회자됐었습니다. 장소는 서울대, 사건은 대기업 취업설명회였습니다. 당시는 대기업과 대학 간에 '기업 맞춤형 인재'에 대한 토론이 팽팽하던 때였습니다.

해당 취업설명회에서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현재 대학생들이 기업에 맞는 인재가 되려면 입사후 몇 년의 재교육이 필요하고, 서울대생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며, 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할 책임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그때 그 장소에 있던 학생들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끄덕였을까요, 분노했을까요, 아니면 좌절했을까요. 그 때 한켠에서 취업설명회를 듣고 있던 한 노교수께서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귀사가 저희 학교의 학생들을 평생 책임진다면 저희도 그렇게 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귀사에서는 길어야 40대입니다. 그 이후에 이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저는 대학이란 무엇을 하든 자신의 두 다리로 설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들었던 일화라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고, 어쩌면 이야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교수의 말씀은 켄 로빈슨이 말한 'organic'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2.

교육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는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조직화된 힘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교육만큼 결집하기 어려운 이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학교나 선생님, 정부가 손 내밀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그 때는 이미 졸업을 했거나 다른 선택을 한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정말 눈부시다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 21>은 대학 교육과 운영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한편으로 스스로 해법을 찾아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성공회대 에코놀이단 '반딧불이'의 텃밭 가꾸기, 김장, 매주 수요일 점심 동그라미 밥집 운영은 정말 신선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추 스프'에서 개념을 차용한 '단추 카레'는 역시 젊은 피는 다르구나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대학연합 패션지 <르데뷰> 같은 자치언론의 아이디어도 훌륭했습니다.

이런 접근은 비즈니스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현재 비즈니스 세계에는 만성 피로감이 있습니다. 장기화되는 금융위기, 불확실성 증가, 경쟁심화 등으로 자신이 속한 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하려고 애쓰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길어 지고 있습니다. The Economist는 이런 과로 상황 속에서 회사가 직원들에게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그런 여력이 안 된다면 직원들 스스로가 '반딧불이'와 같은 접근을 고민해야 합니다. 비즈니스 세계에도 'organic'이 될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요.

* 밭 갈아 배추 키워 김장 담가 나눠요 (한겨레 21, 2010.4.12)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7063.html



3.

드물지만 때로는 선생님이 먼저 나서서 교육에 변화를 불어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청소년의 위한 인문학 서점으로 유명한 '인디고서원'은 10년여 간 논술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허아람 대표의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인문학 독서의 생각을 이끌어내는 힘에 주목한 그녀는 인문학 공동체에 대해 고민했고 이를 실현시킬 동료를 만났습니다.

인디고서원은 기본적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합니다. 책을 통해 꿈을 꾸고 새로운 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세대. 이런 인디고 아이들은 인문학 읽기를 통해 주제를 선정하고, 이를 포럼 형식으로 토론하고(정세청세),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 위해 책의 저자를 초청하거나 만나러 여행을 떠납니다(인디고 유스 북페어). 그리고 그렇게 조각조각 찾아낸 새로운 가치에 대한 단상을 책으로 펴냅니다(INDIGO+ing). 단순해 보이지만 용기있고 뜻 있는 친구들만이 해낼 수 있는 실천적 지식인 셈입니다.

2주 전 사회혁신기업 인큐베이팅 회사인 sopoong이 기획한 '부산 달기차'에 참석해 인디고서원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특별한 곳이 아닌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동네 한 복판 학원가들 사이에 있다는 것에 놀랐으며, 4층 높이의 벽돌 건물의 웅장함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하지만 지하의 '사랑의 방'에서 인디고서원 소개를 받으며, 한 사람의 사회혁신가의 뜻 만큼이나 무거운 짐의 크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차고 어둡고 컸습니다. 오늘 인디고서원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건 허아람 대표의 10년간의 고민과 실천은 오랜시간 축적한 전문성과 차가운 이성으로 차분하게 하나 하나 만들어 갔겠구나...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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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난 서점'에서 10대 토론장으로 (시사 IN, 2009.8.3)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4976

* 인디고서원
http://www.indigoground.net/list2.html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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