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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4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시투아앵 오블리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시투아앵 오블리주로>


고종석 씨는 <코드 훔치기>라는 책에서 한국어의 시민은 두 가지의 의미를 뭉뚱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 첫 번째는 시민계급으로서의 시민이고, 둘째는 시민의식 자체의 시민이다. 앞의 시민은 부르주아의 영역이고 뒤의 시민은 프랑스어 시투아앵(Citoyeon)에 가깝다. 부르주아로서의 시민이 경제적, 계급적의미를 함축한다면 시투아앵으로서의 시민은 정치적 정신적 의미를 함축한다. 그리고 두 시민의 영역은 노블이라는 귀족 계층에 대항하며 그 영역을 확장해왔고, 귀족계층의 붕괴로 현재 시민의 권력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시민의 전성시대인 오늘날 고귀한 신분의 사회적의무를 의미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제 ‘부르주아제 오블리주’나 ‘시투아앵 오블리주’로 용어를 바꾸어야할 듯 싶다. ‘노블’이 의미하는 귀족계층이 붕괴하고 그 자리에 시민이 들어앉은 지가 반세기 가량 지난 오늘날 실재하지도 않는 노블레스 라는 개념은 책임의 주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과거 특정계층에 한정적으로 부과되었던 사회적 책임은 이제 모든 시민의 책무로 책정되어야 한다. 경제적 정치적 의미의 시민인 부르주아에게도, 정치적 정신적 의미인 시투아앵에게도 오블리주라는 사회적 책임은 골고루 전가 될 때가 온 것 이다. 프랑스나 영국과 달리 애초부터 노블이라는 봉건적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에서 사회적 책임의식은 모든 시민에게 골고루 전가되고 있다. 전체 미국인들의 98%가 어떤 형태로든 기부에 참여하고 전체 기부금의 77%가 소액기부자로부터 나온다. 록펠러, 빌게이츠, 워렌버핏 등 미국사회의 내로라하는 부자들 역시 사회 환원을 당연한 의무로 여기며 막대한 재산을 선뜻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오블리주는 어떠한가?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할 계층을 존재하지도 않는 노블에 한정하며 부르주아층도 시투아앵 층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급급하다. 이러한 사회의식 속에서 우리사회에서 기부문화는 퇴색된 지 오래다. 현대판 부르주아층에 해당하는 기업인들은 기부금을 비리를 막기 위한 면제부로서 약용하는 사례가 번번하다. EH한 일반시민들에게서 이루어져야할 풀뿌리 기부금액은 OECD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사회환원 문화가 시민 의식 속에 잘 녹아 있는 사회의 가계부에는 우리사회에서 볼 수 없는 항목이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기부금란 이다. 자신의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자신의 규모에 맞게 일상적으로 사회기부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눌 수 없는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듯 모든 사람은 의지만 있다면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요즘 태안을 찾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 시투아앵 오블리주가 조금씩 우리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시투아앵 오블리주’문화를 뿌리내려야 할 때이다.


                                                     2008.01 written by 따사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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