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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4.01 누가 인형의 집을 지었는가



  4월 3일부터 6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극단 마부 마인의 <인형의 집>이 공연된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리 브루어는 이미지 연극의 3대 거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리 브루어 식 인형의 집 이미지를 구현했다. 이 작품의 이미지 중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크기의 정치학’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은 모두 키가 130cm도 안 되는 왜소증 남성들이며 여성 배우들은 모두 170cm 가 넘는 장신이다. 그는 실제로 초미니의자와 식탁, 인형 이 누울만한 크기의 침대를 들여놓고 무대를 진짜 인형의 집으로 설계했다.

 출입문, 가구, 피아노 등 모든 것이 남성들의 작은 키에 맞춰진 인형의 집에서 170cm가 넘는 노라는 드레스를 구겨 넣으며 힘겹게 낮은 문을 통과하고 작은 의자에 앉아 힘겹게 차를 마신다. 남성의 크기에 맞춰 설계된 인형의 집에서 노라를 비롯한 여성들은 남성의 눈 높이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끓고, 엉금엉금 기어 다녀야 한다.


 간담회에서 만난 리 브루어는 “모든 것이 여성에게 맞지 않고 억지스러운 인형의 집에 노라를 살게 함으로써 입센의 원작이 보여준 가부장적 제도들과 그 모순 취약성을 상징화 했다.”고 했다.


 극단 마부 마인의 <인형의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성 키에 맞춰진 세트일 게다. 하지만 우리가 더 심도 있게 보아야 할 것은 남성 중심으로 맞춰진 세트자체가 아니라, ‘누가 인형의 집을 그런 식으로 지었는가?’라고 생각한다.


  인형의 집이 여성인 노라에게 불편하게 설계 된 것은 남성을 대변하는 그 집의 주인 토어발트(노라의 남편)탓만이 아니라, 불합리한 집 설계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인형의 집자체와 그 집주인이 문제가 아니라 인형의 집을 그런 식으로 지을 수밖에 없는 사회분위기. 그리고 남성만이 집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 상황 속에서 인형의 집은 남성 중심적으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이 초연된지 130여년이 지난 오늘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에게 불편하게 지어진 인형의 집 자체가 아니라 ‘인형의 집을 누가 지었고, 어떤 맥락에서 인형의 집이 그런식으로 밖에 지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입센의 페미니즘이 내 작품에서는 은유적으로 '크기의 비유'로써 표현된다.
'인형의 집'은 바로 남성의 세계이다. 남성들이 스스로를 거대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을
최대한 작게 축소시키는 여성들만이 그 안에서 기꺼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극단 마부마인의 <인형의 집> 연출가 리 브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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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짓는 것 뿐 만아니라 과학, 의학 등 많은 분야는 여성들이 도저히 설계하거나 보수 할 수 없는 인형의 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여성중심의 역사가 아닌 (herstory) 남성 중심의 역사(history)로 쓰여진 분야는 종종 발견된다.


  히스테리’라는 용어는 인형의 집처럼 남성 중심으로 모든 것이 설계되는 역사적인 잔재를 잘 보여준다.

‘히스테리’는 사전적으로 신체ㆍ정신적 질환을 뜻하며 어원은 히스테라(hystera, 자궁의 그리스어)이다. 고대 학자들은 자궁이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임신 등을 통해 자궁이 채워지기를 원하여 여자들이 규칙적으로 임신하지 않으면 히스테리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플라톤, 히포크라테스 같은 학자들도 여성의 병은 돌아다니는 자궁에 의해 생긴다고 말할 정도로 이는 하나의 의학이론이었다고 한다. [출처] "여성의 몸은 '우주'와 같다"



 당시 많은 심리학자들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자궁이 여성의 몸속에서 떠돌아다니다 머리에 자궁이 박혀 히스테리와 같은 정신병이 도진다고 했다. 이러한 남성심리학자들의 진단에 화가 난 여성들은 스스로 심리학을 공부해 심리학자가 된 여성들도 많았다.



 “여성들의 히스테리는 여성이 여성의 욕망을 몸으로 표현하는 한 방법입니다. (…) 호흡곤란, 졸도, 알러지, 실어증, 거식증이나 폭식증 등 말입니다. 그런데 왜 여자들은 그렇게 어렵게 표현할까요? 그냥 말로 하면 되잖아요? 왜 말로 하지 않고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냐는 거죠. 그건 말이죠. 우리의 이 말이나 글을 통해서는 여성들의 근원적인 욕망을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죠. 자고로 말이나 글 그러니까 언어란, 대부분 남자들이 만들어내고 그들이 향유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어요.” - 연극 <히스테리아> 대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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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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