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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심금, 빛의 제국, 피레네의 성...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적인 작품만큼이나 시적인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들게 한다"라고 말하며 시적인 제목을 작품의 주요 요소로 중시했다.

난 만화책 <블리치(Bleach, Tite Kubo, 2004~)>를 마그리트와 같은 이유로 좋아한다. <블리치>의 매 챕터 표지에서는 마그리트가 말한 시적 언어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싸우는 장소, 목적, 상대에 따라 다채로운 언어들로 수놓고 있는 챕터 표지. 타이토 쿠보는 챕터 표지를 때로는 흩뿌리는 시처럼, 때로는 질주하는 영화처럼 온갖 공력을 기울인다.  
 
1.
이치고와 친구들이 학교를 다니는 블리치 챕터 표지들은 살랑거리듯 가볍고 경쾌하다. 모든 싸움은 고만고만한 방학 숙제나, 모두가 기다리는 수업종료 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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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루키아를 잃은 뒤 거듭된 훈련 속에 검의 자아을 대면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내면의 깊이만큼 챕터 표지도 점차 본연의 색과 과감한 구도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언어와 구도, 저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빛, 불확실한 한 걸음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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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 많은 싸움, 수 많은 입장... 이야기는 점점 깊어지고, 얽혀있는 감정들의 실타래가 갈래갈래 복잡해질수록, 신기하게도 표현은 더 단순해진다.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슬픔을, 그 사이마다 분노와 공포까지 거리낌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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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근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블리치는 챕터 -108 ~ -97을 통해 주변부 캐릭터를 단숨에 이야기의 중심부로 가져온다. 'Turn Back The Pendulum'이란 시적 제목 외에 챕터 숫자 앞에 '-'를 붙여 챕터 자체를 이전 챕터와 동등한 별도의 위치를 부여한 점은 정말이지 탁월하다. 이 챕터를 통해 <블리치>는 몇 개의 별을 위한 이야기에서, 수십개 각자의 빛을 노래하는 별들의 이야기로 탈바꿈된다.

Chapter -108. Turn Back The Pendulum (역시 One Manga)
http://www.onemanga.com/Bleach/31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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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챕터 표지는 소설, 시, 영화 등과 만화를 차별화시켜주는 중요한 형식적 요소다. 챕터 표지는 길고 긴 한편의 이야기를 수 백개의 짧은 호흡으로 나눠준다. 각 호흡은 전체 이야기 하위로 기능하는 동시에 각각의 선명한 색과 향을 간직한다. 이는 아마도 일/주간으로 소개되는 만화 출간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그 오랜 전통 덕분에 만화는 특정 소재에 대해 입체적이고 속도감있게 다양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토 쿠보의 챕터 표지는 수많은 만화 중에서도 특별하다할 수 있다. 영화 브로셔처럼, 책갈피 속의 시처럼, <블리치> 챕터 표지들도 기억되고 회자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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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와 내가 협력해온 싸움...
그건 아무래도 지구를 위한 싸움 같은건 아니었다.
인간을 위한... 아니, 나라는 개인을 위한 싸움이었다.
오른쪽이는 둘째치고 나는 끝내 기생생물의 입장에 설 수 없었다.
그렇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불가능했다.

생물들은 때로는 서로를 이용하고, 때로는 죽인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아니, 상대를 자신이라는 '종'의 잣대로 재면서
다 파악한 기분을 내서는 안 된다.
다른 생물의 마음을 아는 체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다른 생물들은 아무것도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설령 전혀 이해할 수 없어도 존중해야할 동거인에는 틀림없다.

다른 생물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외롭기 때문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멸망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마음에는 인간 개인의 만족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그게 전부니까.
인간의 잣대로 인간 자신을 비하해 봤자 의미는 없다.

- 신이치 (Shinichi Izumi, 기생수 #10)

(오른쪽 -> 왼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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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에서...
길에서 만나 알게된 생물이 문득 돌아보니 죽어 있었다.
그럴 때면 왜 슬퍼지는 걸까.

그야 인간이 그렇게 한가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라구.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

- 오른쪽이 (Migi, 기생수 #10)


이야기 내용만이 아니라 만화의 구성법이 전혀 달랐다. 무슨 소리냐 하면, <후코>는 우선 작품 속에 <등장인물>이 있고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사건>을 생각해 가는 식이었다. 그에 반해 <기생수>는 우선 <사건>이 존재하고 이어서 그에 대처할 <등장인물>들을 배치해 갔다는 얘기다. 전자의 <등장인물>에 맞춰 <사건>들을 만들어갈 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데다 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는데, <사건>을 먼저 만드는 것은 그 자체가 즐겁고, 펜끝도 슬슬 움직였다. 나는 그런 타입의 만화가였던 것이다. 그걸 깨달았을 때 기생수라는 소재를 서랍에서 끌어냈던 것이다.

- 이와아키 히토시 (Hitoshi Iwaaki, 1995)


기생수를 거의 10년만에 다시 읽었다. 전에 없던 깊이와 구성을 재발견하는 기쁨은 네 차례 읽었던 헤르만 헤서의 <데미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Hitoshi Iwaaki는 외계인의 시각을 빌어 겨우 10권의 만화책에서 인간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 이기심, 약함(Fragile), 강점(여유)... 집단지성까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현재 기생수(Parasyte)는 북미에서 출간되고 있으며, 영화로도 제작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Hitoshi Iwaaki는 현재 대작 히스토리에(Historie)를 집필 중이다.


* 기생수(Parasyte) 관련 정보
http://en.wikipedia.org/wiki/Parasyte

** 기생수(Parasyte) 영문판 (정말 대단한 사이트다)
http://www.onemanga.com/Parasy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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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유 없는 살인과 죽음...
그와 함께 늘어만 가는 원인 없는 분노와 끝 모를 슬픔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녕 사형만이 최선일까?
우리는 살인자와 사형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어디까지가 응당한 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록 만화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손주를 떠나 보낸 한 할아버지의 진솔한 고백은
사형수와 사형제도에 대해 기존 작품들이 보여준 단순한 감정호소와 인권옹호 이상의
인생에 뿌리 박은 단단한 사형제도 반대 논리를 보여준다.


이 책에 써 있는 내 마음을,
손주를 죽인 남자 'A'가 다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는 인간을 이해해야 할 텐데
남을 미워하지도, 배신하지도, 슬프게 하지도 않고,
남을 사랑하고, 남을 위해 살고,
처자를 지키며 성실하게 일하고,
그걸 50년간 계속해온 나란 남자를

A라는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쌓아온 게 있을까...?
내 생각에는 그런 건 없다고 본다
그는 아직 어리다
지금의 그가,
내가 50년 간 쌓아온 것의 무게를 어찌 알 수 있으랴
이대로 그가 사형 당한다면 나의 50년은 무엇이었는지 어찌 알겠는가
모쪼록 그가 나라는 인간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나의 슬픔을, 언젠가는 이해했으면 한다
그런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남을 미워하지도, 배신하지도, 슬프게 하지도 않고,
남을 사랑하고, 남을 위해 살고,
처자를 지키며 성실하게 일하고,
그걸 몇 십년간 계속함으로써,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

                                                                       사형수 042 #4 (Yua Koteg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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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WONKISH circles, energy efficiency used to be known as “the fifth fuel”: it can help to satisfy growing demand for energy just as surely as coal, gas, oil or uranium can. But in these environmentally conscious times it has been climbing the rankings. Whereas the burning of fossil fuels releases greenhouse gases, which contribute to global warming, and nuclear plants generate life-threatening waste, the only by-product of energy efficiency is wealth, in the form of lower fuel bills and less spending on power stations, pipelines and so forth. No wonder that wonks now tend to prefer “negawatts” to megawatts as the best method of slaking the world's growing thirst for energy.

The elusive negawatt (The Economist, May 8th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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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think I would presume to know the first thing about who you are because I read "Oliver Twist?" And I don't buy the argument that you don't want to be here, because I think you like all the attention you're getting. Personally, I don't care. There's nothing you can tell me that I can't read somewhere else. Unless we talk about your life. But you won't do that. Maybe you're afraid of what you might say.

 

-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the dialoue between Will and S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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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에 이어 내가 본 두 번째 Ninomya의 만화, <주식회사 천재패밀리(Tensai Family Company, 2006), Tomoko Ninomiya>.

Ninomiya는 정말이지 '천재'라는 신인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아무리 만화라 해도 나와 상관없는 딴 세계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나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는 남다른 애정이 쏠린다. 그건 아마도 <노다메>가 음악 천재들의 이야기였던 것에 반해 <천재패밀리>는 비즈니스, 숫자, 예술, 관계, 도움(Support) 등 다양한 면에서 우리 자신들에게 친근한 천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나츠키'와 '하루'는 지금까지도 내게 말을 걸고 있다. 마치 지금의 내게 둘 중 어느 길을 택할지 묻는 것처럼...

항상 가슴에 MBA를 품고 있는 천재고교생 '나츠키'. 기업분석에서 제품기획까지 마치 숙제를 하듯 뚝딱해치우는 그에게 기업과 비즈니스란 어려운 시험문제와 같은 도전의 대상이자 삶의 이유다. 지금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글로벌 기업가 나츠키.

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언제나 조건없이 손을 내미는 '하루'. 아버지 '소스케'와 함께 발길가는 대로 살아온지 어언 10 여년, 일단 생존과 식물에 대한 조예가 확실하고 지구촌이란 말 그대로 실제 패밀리의 개념을 끝간데 없이 확장시켜 나간다. 천재 글로벌 시민이라고나 할까? ^^


이 만화의 백미는 주인공격인 나가사와, 나츠키, 하루 세 명의 친구들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만화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잠시 유보하고 한번 Ninomiya가 그리려 했던 1995년 일본의 젊은 친구들을 만나보자. 그 시절의 인물상들은 지금 한국의 젊은 친구들에게도 유효하다. 물론 내게도.


주식회사 천재패밀리 #6


'나츠키가 그림을 그리고 있잖아?!'
아니... 그림이 아냐.
'이건 제도다!'
굉장해,
잘은 모르겠지만, 나츠키가 폭풍처럼 뭔가를 마구 만들고 있어!
굉장한 힘으로, '회사'를 창조하고 있어ㅡ

                                                                                          (나가사와)

나가사와는 나츠키를 이해하게 되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자꾸 자꾸 고리를 만들어 간다ㅡ
엄청난 속도로 주위의 풍경이 변해간다!
                                                                                          (나츠키)

나츠키는 조금씩 하루로 인해 변해버린 자신의 풍경을 받아들이게 된다.

모르겠어...
하지만... 아빤 이제 자신이 '있을 장소'를 발견했어.
소중한 사람과... 가족...
전세계 어딜 가든 있는 거지.
...
처음으로 외운 주소.
                                                                                           (하루)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세계 곳곳을 누빈 하루는
아버지를 통해 더 큰 개념의 가족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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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회'가 우습게도,
시스템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이번엔 '사회' 속에서
부조리와 불평등이 생기기 시작하는거야.
'빈부의차', '신분의차', '재능의차', '외모의차', '인종차별'...
세상의 잔혹함과 부조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만들어낸 '사회'가,
다시 부조리를 낳는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사회가 된 거지.

물론 가난해도 즐겁고 평화롭게 살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불평등과 사람들의 불만을 흡수하는 시스템...
예를들어 '부조리한 죽음'이더라도 납득할만한 이유가 필요하지.
그 역할을 계속 담당해온 것이, 바로 종교였어.
......

진보는 인간의 정신과 문화, 기술을 높여가지만
그건 사회의 엘리트들과 상류층이 담당하는거야
그에 반해 생물의 진화는,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고, 주류에서 제외되고, 변두리로 쫓겨난 약자들의
생존의 수단이지.

난 지금까지 내내 이 '세상'이 '잔혹하고', '부조리'하다고 말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물은, 필사적으로 '진화'를 하지.
또한 동시에 이 '세상'은 다양한 '풍요'와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거야.

                                                        - EDEN #15 (Hiroki Endo, 2008, 학산문화사)


'진보'와 '진화'에 대한 철학과 스케일이 눈부신 만화책.
Olivia Judson이 EDEN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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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of the microscope is not that it makes little creatures larger, but that it makes a large one smaller. We are too big for our world. The microscope takes us down from our proud and lonely immensity and makes us, for a time, fellow citizens with the great majority of living things. It lets us share with them the strange and beautiful world where a meter amounts to a mile and yesterday was years ago.

     - 'Mites of Moths and Butterflies' 中 (Asher E. Treat, 1975, Cornell Univ. Press)

* 이 구절은 Olivia Judson의 'Pineapple Dreams (2008.03.18)'에서 인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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