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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나이 듦에 관하여
[설특집] "떡국 먹긴 좋아, 나이 먹긴 싫어!"
한국 여성 54% “나이 먹는 것 두렵고 서럽다”
설렘·만족감 등 긍정적 감정은 6.8% 불과
젊은 층일수록 ‘나이 드는 것’에 거부감 높아

▲ 본지 설문조사 결과 설을 앞두고 한국 여성의 54%가 ‘나이 먹는 것이 두렵거나 서럽다’고 답해 여성들의 나이 듦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 여성신문 DB
올해 서른이 되는 회사원 김세영(여)씨는 설을 앞두고 우울증이 밀려온다. 3박 4일 연휴와 푸짐한 음식은 기다려지지만 설날을 기점으로 서른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처진다. 김씨는 “해 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는다는 생각에 지난해 말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설날이 반갑지 않아 올해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한 살 먹긴 싫어, 떡국 먹긴 좋아!”를 외치는 모 통신사 광고 ‘설맞이 되고송’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날 ‘한 살 먹기 싫어’를 외치는 여성들이 많다.

<여성신문>은 설 명절을 맞아 취업 포털 커리어에 의뢰해 전국 412명(20대 153명, 30대 204명, 40대 이상 55명) 여성을 대상으로 ‘설날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인식’을 물었다.

조사 결과 한국 여성 두 명 중 한 명 이상은 나이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한 느낌’에 대해 ‘두렵다(41.2%)’ ‘서럽다(12.9%)’ 등 54.1%의 여성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냈다. ‘설렘(3.9%)’ ‘만족감(2.9%)’ 등 긍정적으로 답변한 사람은 6.8%에 불과했다.

40대 이상 여성의 경우 나이 먹는 감정에 대해 ‘두렵다(32.7%)’에 이어 ‘서럽다(21.8%)’는 답변이 2위를 차지했다. 이는 20대(16.3%)와 30대(7.8%)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로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두려움과 함께 서러움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여성의 58.8%가 나이 드는 것이 두렵거나 서럽다고 답해 10대를 제외한 모든 세대(30대 50.5%, 40대 이상 54.5%) 중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해 놓은 것도 없는데 나이만 자꾸 먹는다"

여성들이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여성이 나이가 많아지면 그에 따른 성과를 쌓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성들 중 64.3%는 ‘해 놓은 것은 없는데 나이 먹는 불안감’ 때문에 나이 먹는 것이 달갑지 않다고 밝혔다.

나이에 대한 부담감으로 도전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서(15.5%), 없다(9.5%), 나이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이 존재해서(7.3%), 여성적 매력이 사라져서(3.4%)가 뒤를 이었다. 
특히 40대 이상 여성들은 나이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체감하는 정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40대 이상 여성들은 ‘나이 차별에 대한 실질적 불이익이 존재해서(16.4%)’를 ‘해 놓은 것은 없는데 나이 먹는 불안감(54.5%)’에 이어 나이 먹는 것이 달갑지 않은 이유 2위로 꼽았다. 이 답변은 20대와 30대(5.9%) 여성에 비해 3배가량 높은 수치로 40대 이상 여성이 젊은 여성보다 나이로 인한 실질적인 차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듣기 싫은 말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니’

설날 많은 여성이 나이를 이유로 연장자 역할을 강요받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설날 느끼는 나이 차별 문화에 대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양보와 인내를 강요받을 때’가 33.2%로 1위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집안 중대사를 책임져야 할 때’가 23.5%로 2위를 차지했다.

특히 나이와 관련해 설날 가장 듣기 싫은 말을 물은 결과 두 명 중 한 명의 여성이 ‘그 나이 먹도록 ○○(결혼·출산 등) 안 하고 뭐했니?’를 꼽았다.

40대 이상 여성들은 58.2%가 설날 듣기 싫은 말이 없다고 답해 나이가 들수록 나이와 관련된 표현에 담담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의 경우 30.3%가, 20대의 경우 24.2%가 설날 듣기 싫은 말이 없다고 답했다. 

경험·경력 쌓여 나이 먹어도 좋아

나이 드는 것이 속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얻는 값진 선물도 있지 않을까.

조사 결과 대부분의 여성들은 ‘경험과 경력이 쌓여서(45.9%)’ 나이 먹어 좋은 점도 있다고 답했다. 
40대 이상 여성은 54.6%가, 30대 여성의 경우 48.0%, 20대 여성의 경우 39.9%가 경험과 경력을 나이 먹는 가장 좋은 이유로 꼽아 나이가 많을수록 경험과 경력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그래도 나이 드는 것이 좋은 이유’에 대해 ‘없다(22.3%)’라는 답변이 2위를 차지해 나이 듦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필요함을 환기해줬다.

특히 나이가 적을수록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았다. 나이 먹어서 좋은 점에 대한 질문에 40대 이상의 여성 12.7%만이 ‘없다’고 답한 반면 20대의 경우 26.8%가, 30대의 경우 21.6%가 ‘나이 먹어서 좋은 점이 없다’고 답했다. 
‘나이 듦에 대하여’ 저자인 여성학자 박혜란 씨는 “젊음 예찬, 외모 중심주의가 강조되면서 사회가 여성의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린다”며 “수명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나이를 능력으로 재단하는 연령차별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생을 길게 보고, 나이 단계마다 쌓을 수 있는 이력과 장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1015호 [특집/기획] (2009-01-16)
김재희 / 여성신문 기자 (jay@womennews.co.kr)


여성의 나이 듦에 관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설 연휴
아랫목에 궁둥이 들이밀고 만두 빚기
결혼 후 첫 설…시어머니 배려에 ‘뭉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맘 때 나는 ‘유부녀’가 되었다. 무려 8년을 만나고 연애가 조금은 지겨워질 무렵이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안다면 너무도 잘 아는, 그렇지만 모르는 것도 많은 그런 사이였다.
유부녀의 몸으로 맞게 된 첫 설. 나는 슬펐다. 매년 명절 때마다 거실에서 뒹굴며 엄마가 해주는 떡국과 갈비찜을 먹던 내가 시댁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설 전날, 미리 와서 음식을 만들라는 시어머니의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애꿎은 남편에게 골을 부렸다.
“아니, 도대체 왜 명절이 되면 며느리들이 꼭 그 전날 가서 일을 해야 해? 이건 엄연히 성차별이라고. 당신도 나처럼 일해? 그런 건 아니잖아. 아우, 정말 싫다 싫어. 이러려고 결혼한 건 아니라고. 대체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런 유교적인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설 전날부터 음식 하는 일이 싫기만 했던 나는 남편에게 날카롭게 몇 마디 쏘아붙였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예상하지 않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댁에 도착했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에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시어머니가 현관까지 뛰어나왔다.
“아이고, 춥지? 어서 들어와요.” 아랫목 이불을 훅 걷어내고는 제일 뜨듯한 자리로 나를 안내했다. 그러고는 갓 만든 식혜와 한과를 내오시고는 웃으시며 이렇게 말했다.
“결혼해서 첫 명절이라 부담이 많이 됐지요? 올해는 며느리 힘들까봐 내가 미리 해놨어요. 여기 아랫목에 앉아서 만두나 같이 빚어요.”
김치며 갈비찜, 각종 반찬과 만두소 재료까지 모두 준비돼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종일 음식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갓 결혼한 며느리가 혹여 부담이라도 갖게 될까 싶어 미리 준비한 것이다.
나는 그날 뜨듯한 아랫목에서 궁둥이를 지지며 만두만 빚었다. 내가 일어나 일이라도 거들라치면 시어머니는 절레절레 손을 내저으며 잘 보기만 하라며, 어차피 평생 일하며 살 텐데 지금부터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미소 지으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내가 처음에 결혼했을 때 얼마나 시댁이 낯설고 그랬는지… 그때 설 쇠느라 하루 종일 일하고 떡국을 먹는데 얹혀서 아주 혼났어요. 시어머니가 얼마나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나는 그랬지만 우리 며느리는 안 그래야지요. 며느리한테 잘 해야 우리 아들이 대접받지요. 허허허….”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시어머니의 그런 배려가 고맙기도 하고 그저 음식 하는 일이 싫다며 투덜거리던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결혼한 지 5년차가 된 나는, 명절이 되면 그때보다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전날 어머니와 김치도 함께 버무리고 갈비찜도 재워놓고. 
일하는 게 때론 힘들다. 하지만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오로지 어머니의 몫으로 돌아갈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정의 문화도 많이 바꿔놓았다. 만두 빚기나 밤 까기, 마늘 찧기 등은 시아버지나 남편 등 남자들의 몫이다. 나와 어머니도 일하지만 남성들도 명절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명절 문화는 아직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오로지 가족에게 따뜻한 떡국 한 그릇, 갈비찜 한 점 먹이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는 시어머니의 그 마음만은 참 고맙고, 생각할 때면 눈물이 나는 것은 비단 내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 설에도 우리 시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할 것이다. 올해는 나도 일찍 시댁으로 건너가 함께 김치를 담가야겠다.
김진아 / 34·직장인
1015호 [] (2009-01-16)

여성의 나이 듦에 관하여
[기자파일] 나이 듦의 미학을 삶 자체로 증명하는 그녀들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가수 양희은씨, 배우 이주실씨, 박혜란 여성학자, 조형 이화여대 명예교수, 조옥라 서강대 교수. 이들 모두 나이 듦의 미학을 몸소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2007년 8월 19일 일기에는 ‘사랑이란 그 흔한 단어를, 그녀에게 배웠다’고 적혀 있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배우 이주실 선생님을 만난 날이었다. 선생님은 올해로 66세가 되셨다. 정확히 16년 전 말기 암 판정과 동시에 1년 남짓한 시간만이 남았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그때부터 선생님은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
1년이 남았다면 하루를 10년처럼 살겠다며 사회복지활동과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자 몸은 기적처럼 회복됐고 그녀는 다시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선생님은 인터뷰 당시 당신의 삶을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던 찰나 선생님이 대신 가득 눈물 고인 눈으로 기자의 손을 꼭 잡았다.
인터뷰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나이 듦의 미학을 가르쳐준 또 다른 분은 양희은씨다. ‘내 나이 마흔 살에는’에서 노래한 것처럼 그에게 젊음은 오히려 ‘힘겨운 하루 어떻게 이겨나갈까 무섭기만 했었던 지난날’이었다. 다양한 여성행사에서 만날 때마다 “나이 드는 게 어찌나 좋은지 몰라” 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여성시대’ 진행자로서 시장통 아낙들의 옹골찬 기운을 전국에 퍼뜨리고 있는 그는 언젠가 실버세대를 위한 강력하고 속도감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랜 방송진행 경험을 살려 양희은씨가 집에서 살림하며 실버세대를 위한 방송을 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청취자들이 이 큰언니의 방송을 사랑할지 벌써부터 그림이 그려진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조옥라 서강대 교수, 조형·김은실 이화여대 교수, 박혜란 여성학자 등 여러 여성학자들은 나이 든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몸소 보여주는 분들이다.
시대적 과제에 대해 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이분들을 뵐 때면 제자들보다 더 젊고 생생한 마인드의 소유자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기자에게 요가원에 초대하고, 주말 산책을 제안하고, 영화 데이트를 신청한다. 수수한 옷차림으로 자신들을 그저 ‘정희 친구’라 소개하며 매년 6월이면 고 고정희(1948~91) 시인의 고향인 해남으로 떠나는 선생님들의 길에 동행하면서부터는, 동백꽃이 지기 시작하는 6월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산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늙음이란 젊음이 스타카토로 끝나는 별개의 삶처럼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기를 쓰고 늙음을 밀어내려고 애쓴다. 마지못해 늙음 이후의 생활을 예비하지만 늙음 이후의 생활, 즉 노후생활이 어떻게 따로 있을 수 있는가. 노전생활이란 말이 없는 것처럼 노후생활이란 말도 틀린 말이다.
우리는 그저 늙어가고 있을 뿐이다(박혜란 ‘나이 듦에 대하여’ 중)”
오늘도 늙어가고 있는 이분들의 삶 자체가 희망의 증거다.
1015호 [] (2009-01-16)
채혜원 / 여성신문 기자 (nina@womennews.co.kr)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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