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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나리오를 통해 한 번도 기부한 적이 없던 사람이 사려 깊은 기부자로, 그 후 단체에 유산을 기증하는 기부자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살펴보고 그 동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지나는 피곤하고 지친 채로 집에 온다. 지루하고 힘든 하루였다. 그녀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신발을 벗어 던진 채 그날 온 우편물을 대충 훑어본다. 대부분 쓸데없는 광고물이다. 하지만 우편물 하나가 눈길을 끈다. 자세히 보니 여성 노숙자와 그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지역 쉼터에서 보낸 것으로 별로 화려하지도 않고 디자인도 엉성한 우편물이다.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은 지나는 편지를 뜯어 대충 읽어보고 적은 액수지만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저녁을 준비하면서 35달러를 수표에 적어 반송봉투에 넣어둔다. 다음날 그녀는 반송봉투를 우편함에 넣고는 이내 그 단체에 대해 잊어버린다.

하지만 지나가 이렇게 충동적으로 한 기부는 그녀의 기부 능력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지역 쉼터에 대한 헌신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노숙자 쉼터는 이제 충동적인 기부자인 지나를 습관적인 기부자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며칠 동안 지나는 직장과 집을 왕복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편물 중에 쉼터에서 온 감사 편지를 발견하고는 "답장까지 보내다니 고마운 일이군"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이 기부한 것에 대해 뿌듯해하면서 그 쉼터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 후 몇 달 동안 지나는 쉼터 소식지를 받고, 우연히 쉼터 근처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석 달 후에 지나는 쉼터로부터 또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쉼터는 이 편지에서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달하면서 쉼터 아동들의 놀이터 장비를 구입하도록 추가로 기부해줄 것을 요청한다. 지나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50달러를 다시 기부하고 지난번처럼 쉼터에서 감사 편지를 받는다. 3개월 후에 그녀는 다시 쉼터로부터 시청이 일부 지원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과 관련해 기부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지나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차의 타이어를 두 개나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기부를 하지 못한다. 그 후 다시 석 달쯤 지나(처음 기부한 때로부터 아홉 달이 될 즈음) 지나는 쉼터의 오픈하우스에 초대를 받아 처음으로 쉼터를 방문하게 된다. 그녀는 쉼터를 돌아본 후 그곳의 이사들과 대표를 만난다. 오픈하우스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당일 모금행사에 참여하고 25달러 정도의 기부 요청을 받는다. 지나는 다시 25달러를 기부한다. 이후 두 달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되고 지나는 몇 번에 걸쳐 쉼터의 행사에 참여한다. 또 휴일에는 호텔에 투숙할 때마다 가져온 샴푸, 컨디셔너, 비누 등을 쉼터에 가져간다. 그 후 그녀는 기부를 요청하는 전화모금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다른 기부자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다.

이제 쉼터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는 충동적인 기부자에서 습관적인 기부자로 전환된 것이다. 기부 요청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 한도 내에서 기부를 한다. 이제 그녀는 자신을 단체의 일원으로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종종 쉼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2년 동안 지나는 우편 기부 요청이나 특별행사를 통해 적은 액수지만 해마다 두세 번씩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이후 쉼터의 한 이사로부터 연간 250달러 정도를 기부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해당 이사가 직접 서명한 개인적인 편지를 받는다. 이 편지에서 이사는 그 동안 그녀가 쉼터를 지원해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쉼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면서 지나가 이 기부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이 며칠 후에 전화를 할 테니 그때 결정해달라고 요청한다. 지나는 이제 이 단체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자신이 이 정도의 기부를 감당할 수 있는가? 이 단체에 250달러를 기부할 정도로 충분한 관심을 갖고 있는가? 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사에게 물어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 이 단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지나는 이미 사려 깊은 기부자 단계에 진입해 있다. 그녀는 250달러를 기부할 수도 있고 100달러를 기부할 수도 있다. 혹은 계속해서 예전처럼 1년에 서너 번 소액을 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쉼터에 대한 자신의 기부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지나는 쉼터 이사와 통화한 후 250달러를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그 후 3년 정도가 지나면서 지나와 쉼터의 관계는 우편 기부와 같은 일반적인 단계에서 단기 프로젝트의 자원봉사나 행사 참석 등과 같은 다소 사적인 관계로 발전했고 그 다음에는 이사로부터 직접 기부 요청을 받는 아주 개인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그 후로도 몇 년에 걸쳐 지나는 시간이나 돈을 기부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5년 동안 쉼터의 일반 기부자였던 지나는 이제 1년에 1,000달러를 기부하는 고정 기부자가 되었다. 그 해에 쉼터는 새 건물을 구입하기로 결정한다. 건물 구입비는 150만 달러 정도가 필요하지만, 이 건물을 통해 현장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쉼터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쉼터는 건물 구입비를 충당하기 위해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요청해서 지원금을 받는다. 또 재단 두 곳에서 25만 달러, 몇몇 기업에서 5만 달러를 지원받는다. 그리고 나머지 25만 달러를 개인 기부자에게서 지원 받을 계획이다. 그래서 쉼터는 개인 기부자들에게 정기 기부금 외에 건물 구입을 위한 특별 기부를 요청하는 모금 캠페인을 벌인다. 쉼터는 지나가 믿을 만한 자원활동가이며 성실한 핵심 기부자이기 때문에 특별모금위원회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한다. 지나는 이 위원회에 참가하는 것뿐 아니라, 예기치 않게 이모로부터 1만 달러의 유산을 물려받아 이를 전부 기부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돈을 의미 있게 사용한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한다.

캠페인이 끝난 후 지나는 이사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 해에 쉼터에서 유산 기부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재산을 쉼터에 물려주도록 자신의 유언장을 고쳐 쓴다. 매우 헌신적인 기부자가 이 단계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지나 역시 이 결정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쉼터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신중하게 계획한 결과이며 기부자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 <모금이 세상을 바꾼다>, 킴 클라인 Kim Klein, 2009, 아르케, pp.45~47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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