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유통기한에 대하여 – 버스정류장(가오싱젠)
“그들은 왜 아직도 가지 않지?”
……
“얘긴 다했어.”
……
“우린 그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
“우린 그들이 가기를 기다리는 거야.”
(버스정류장, 가오싱젠, 2002, 민음사)
버스정류장… 떠남을 위한 기다림이 있는 곳. 그 공간은 말이다. 참으로 묘한 곳이다.
몇 대의 버스가 무심히 지나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1년, 2년…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도 그들은 감히(?) 떠나지 않는다. ‘기다릴 것’과 ‘떠날 것’에 대한 정답 없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처음 정류장을 찾은 목적과 이유는 모두 원형을 잃은지 오래다.
기다림은 오기로, 기다림에 대한 오기는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미련으로 그 형태를 바꾼다. 만약 혼자였다면 과연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맹목적으로 기다렸을까? 기다림은 ‘각자’의 것에서 시작해, 어느새 ‘함께’의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버스정류장이 오래 전에 폐장된 사실을 알고도 그들은 쉽게 정류장 아닌 정류장을 떠나지 못하고, 동시에, 저마다 독백조의 말을 내밷기 시작한다.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얘기는 다 끝났다. 몹시 혼란스럽다. 그 가운데 조금이나마 힘겹게 진행되는 이야기. 그들이 떠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 까닭…
지금 내게, 우리에게 이런 버스정류장 같은 곳은 없을까? 하루하루의 관성과 동료들의 위로가 쌓이고 처음의 목적과 다짐을 잊지는 않았는가? 어쩌면 버스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리는 벌써 끊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다림에도 유통기한이 필요하다. 비록 갈 곳을 잊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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