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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순[누룩술]의 자는 자후(子厚, 흐뭇한 것)이다. 국순의 조상은 중국 진한시대 농서 사람으로 90대 할아버지 모(牟: 밀)가 순(舜) 임금 때 농사의 일을 맡았던 후직이란 사람을 도와서 만백성을 먹여 살린 공로가 있었다.
- 국순전 (임춘, 2003, 신원)

2.
일찍이 순(醇)이 섭법사에게 나가서 종일토록 담론한 일이 있었다. 이때 온 좌중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허리를 잡았다. 이로부터 그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3.
세상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국처사(麴處士)라고 불렀다. 이리하여 위로는 공경대부와 신선, 방사로부터 심지어는 남의 집 머슴, 나무꾼, 오랑캐나 외국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향긋한 이름을 마시는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흠모하였다.

4.
이들이 여럿이 많이 모였다가도, 만일 국처사가 오지 않으면 하나같이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국처사가 없으면 자리가 흥겹지 못하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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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가전체 작품이라는 의의를 지니는 국순전. 가전체 작품 중에서도 으뜸이다. 국순전이 다른 작품과 차별성을 보이는 것은 국순과 상황을 묘사하는 재치에 있다. 임춘의 후속작인 공방전이나 여타 죽부인전, 정시자건은 친절하게도 주인공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행적을 나열한다. 분량이 불과 5~6 페이지에 불과한 당시 사정을 고려하면 명쾌한 전개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겨우 대상의 역사와 외관을 설명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에 국순전은 그러한 장치가 매우 적다. 대신 국순이 관계하는 상황과 주변인의 입을 빌어 국순의 색과 향기, 그리고 성격까지 그려내고 있다. 약 800년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 빛을 바래지 않고 있다.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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