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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7 우리를 위한 존재, 우리에 대한 존재?
 

<우리를 위한 존재, 우리에 대한 존재?>-몸



 

<루벤스 작- 레우키푸스 딸들의 강간>



 남성화가들이 그린 누드화를 보면 여성의 몸에 대한 판타지적 요소가 잘 드러나 있다. 이들의 눈에 비친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는 비현실적으로 풍만하며 허리와 다리는 가슴과 엉덩이에 맞지 않게 가늘다. 루벤스의 작품에는 이러한 비현실적 몸매를 소유한 여성들이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데 특히 루벤스의 ‘레우키푸스 딸들의 강간’이라는 작품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들의 판타지가 절정을 이룬다. 이 작품은 남성들이 여성을 윤간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루벤스는 강간을 당하는 여인들 옆에 사랑의 신인 에로스를 그려놓았다. 집단 강간을 당하고 있는 여성의 몸에서 육감미를 극대화하고 강간당하는 여성이 사랑을 느낄 것이라는 루벤스의 그림에서 여성의 몸은 주체성을 상실하였다.


독일의 철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에 따르면 예술 작품은 “우리를 위한 존재, 우리에 대한 존재” 라고 한다. 즉 감상하는 우리가 없으면 예술작품은 그냥 물질 덩어리일 뿐이다. 하르트만의 말에 전적으로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 문제는 그가 말하는 “우리”의 개념이 종종 사회적 기득권층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몸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우리”라는 존재에 주체적으로 참여해 기준을 마련하는 계층은 소수인 경우가 많다. 과거 누드화를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우리’라는 주체가 주로 남성들이었던것 처럼 말이다.


요즘은 몸을 감상하는 우리라는 주체의 울타리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다. 가수비, 권상우, 차승원 등 남자 몸짱 연예인이 인기를 얻고, 포르노그라피의 카메라 앵글도 여성의 시선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포르나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몸의 가치를 판단하는 우리의 울타리에 들기는커녕 가치 판단의 대상에 조차 들지 못하는 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장애인의 몸이다. 섹시하다, 뚱뚱하다, 크다, 작다 이전에 가장먼저 떠오르는 장애인의 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그냥 손상된 몸이다. 누군가 이 손상된 몸에 가치 판단을 할라치면 장애인 인권을 운운하며 판단불가 판정을 내린다. 장애인 섹스 컬럼리스트 박지주 씨가 몇 해 전 휠체어 탄 여성의 누드사진 전을 열었다가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산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 우리의 내면에는 장애인의 몸을 우리와 다른 종족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몸을 판단할 기준 자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할 듯하다. 팔이 없는 장애인,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기 전에 그들의 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서 다른 육체적 매력이 포장될 수 있는 장애인의 몸에 대한 열린 관점이 필요하다. 영국의 구족화가 엘리슨 레퍼는 해표지증으로 팔과 다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몸에 대하여 열린 관점을 가진 영국인들은 레퍼의 몸은 손상된 몸이기 전에 비너스와 같은 아름다운 몸으로 바라보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앨리슨 레퍼의 몸을 비너스와 같은 조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니콜라이가 말했듯 사회적으로 아름다운 몸들이 장애인에게도 “우리를 위한 존재, 우리에 대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앨리슨 레퍼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http://www.alisonlapper.com/

                                                                              written by 따사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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