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音을 넘어 和音으로
가로질러 사유하기 / 2008. 2. 4. 14:20
음악사에 있어 바로크시대는 多音-다성음악(polyphony)의 시대였다. 다성음악은 일반적인 화성음악과 달리 하나의 주된 멜로디가 진행되고, 그 밑에 반주가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개의 멜로디가 제 음가를 가지며 진행된다. 다성음악의 개척자인 바하는 대위법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각각의 멜로디가 독립적 의의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화성을 이루도록 했다. 대위법에서는 각 성부가 명료하게 식별할 수 있는 선율적 독립성을 지니며, 또한 여러 성부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되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바하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악기들의 多音을 명료하게 감상할 수 있으면서도 그 개별의 음원이 화음을 이루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음악사에 있어 바로크시대가 多音의 시대였다면, 디지털 사에 있어 오늘은 바로 多音의 시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노암촘스키는 미래의 미디어로 ‘독립적이고, 비영리적인 누구나 참여해 多音을 연주할 수 있는 미디어’를 제시 했고, Daum 사의 이재웅 사장은 이를 착안해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촘스키의 多音정신은 요즘 다음사를 비롯한 포털사이트가 새로운 전략으로 내세우고있는 UCC의 등장으로 현실화 되었다. UCC는 바로크시대의 다성음악과 같이 하나의 음가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모두다 개별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어떤 종류의 음원이나 메인 음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끼와 재능을 알리는 동영상에서부터 전문지식을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는 PCC(proteur created contents),여중생 폭행 동영상등의 고발영상까지 모두 UCC라는 오선지 안에서 자유롭게 음표를 그릴 수 있다. 하지만 UCC가 아무리 자유로운 오선지라고 해도 그 안에 규칙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일정한 룰 없이 그려진 음표는 결코 화음을 이룰 수 없어 소음으로 전락하게 된다. 다성음악이 개별음가를 살리면서도 화음을 이룰 수 있었던 대위법이라는 룰에 의해 화음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UCC의 세계 속에서도 대위법과 같은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하다. 우선 UCC를 제작하는 네티즌부터 기본적인 미디어교육을 받아야한다. 캐나다와 같은 미디어 선진국은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 사용 윤리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받고 정규 수업시간에 직접 동영상물을 만들어 본다. 이 과정에서 공적으로 유포될 동영상이 어떠한 사회적 파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토론하며 기본적인 인터넷 사용 규칙을 배운다. 우리나라도 무분별하게 UCC를 제작하기 전에 인터넷 사용윤리를 숙지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UCC, 의미 없이 단순한 음란영상을 담은 UCC 등은 모두 이러한 기본적인 인터넷 세계의 룰을 숙지하지 못해서 나온 결과다. 다성음악이 각 성부가 명료하게 식별할 수 있는 선율적 독립성을 지니며 화음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대위법이라는 규칙에 다라 음원이 결합되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UCC의 세계에도 대위법과 같은 인터넷 윤리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UCC라는 오선지 안에 실린 多音이 소음이 될 것이냐, 화음이 될 것이냐는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2007.06 written by 따사 p.s 미디어 교육 추천 사이트 -미디어연대 퍼블릭액세스 등 시민미디어운동단체, 미디어교육, 대안미디어운동 자료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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