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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약속, 만남, 여행...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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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엄한 감동이 깃들면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니.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크나큰 즐거움과 크나큰 기쁨을 알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설 때까지,

네가 맞이한 여름날의 아침은 수없이 많으니.

페니키아 시장에서 잠시 길을 멈춰

어여쁜 물건들을 사거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인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 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이타카’,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1863~1933, 그리스)

 

 

어느 날부터인가 인생은 아주 길고 긴 여행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삶이라는 게 좀더 가볍고 즐거워졌다.

 

여행자 사고방식은 아주 편리한 구석이 있다. 물론 여행자에게도 다양한 유형이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두 번 다시형에 해당한다. ‘두 번 다시유형도 다시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이 시간, 이 장소는 두 번 다시 없다. 최선을 다한다!’는 에너자릭한 성실형 타입보다는, ‘아니어도 좋다. 돌아갈 필요는 없다. 이 길 끝에 다른 길이 있다!’는 사통팔달 만사태평형에 속한다.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일 수도 있고, 무책임하다면 무책임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여행 중에 많은 실수도 했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울 수 있는 농도 짙은 시간들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 깨달음 속에서 조금씩 더 성장하고 지혜로워 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 안에도 이타카는 있다. 내 이타카는 나를 닮아서인지 하나의 모습보다는 여러 개의 모습으로 다가왔고, 때론 예고 없이 저 스스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어찌되었던 이타카에 귀기울인 시간들이 쌓여가며 조금씩 그 녀석의 형상도 의미도 뚜렷해지고 있다.

 

분명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타카로 향하는 여정은문득 나를 성장시키고 풍요롭게 해준 지난 길들에 대한 감사편지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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