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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약속, 만남, 여행...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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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치러야 할 때에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바람에 그 고지서가 이제야 돌아온 거예요."
- 나오코

그 장소에서 죽음이란 삶을 결말 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거기에선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나오코는 죽음을 안은채 거기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와타나베, 그건 그저 죽음일 뿐이야. 마음쓰지 말아요." 라고


"와타나베, 영어의 가정법 현재와 가정법 과거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요?"
- 미도리

내가 나오코에 대해 느끼는 것은 무섭게 조용하고 부드럽고 맑은 애정이지만, 미도리에 대해선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서 걸어가고, 호흡을 하고, 고동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뒤흔듭니다. 저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몹시 혼란스러워져 있습니다.


"졸려?" 하고 내가 물었다.
"약간 수면 부족인가 봐요. 어째 좀 바빠서요. 하지만 괜찮아요. 걱정말아요... 많이 기다렸죠?"
"뭐, 괜찮아. 난 시간이 너무 많아 죽을 지경이니까."
"그렇게 한가해요?"
"내 시간을 좀 줘서, 그 속에 미도리를 잠자게 해줬으면 싶을 정도지"

미도리는 턱을 고인채 생긋 웃고는 내 얼굴을 보았다.
"선배, 참 친절한 사람이에요."
- 와타나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한다.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딘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공간의 한가운데에서 미도리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동시에 하나의 시대를 감싸고 있었던 空氣라는 것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自我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나가 그 싸움에서 살아 남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긴 하지만.

- <상실의 시대 Norwegian Wood> 무라카미 하루키, 1998, 문학사상사, 유유정

200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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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백호에게 선물 받았던 책. 그리고 문학 속에서 미술작품의 길을 찾던 펜팔 친구 덕분에 시작하게 된 책. 길고 지루한 군생활처럼 꽤나 오래 잡고 씨름했던 책.

덕분에 하루키란 일본 작가를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익숙해진 죽음을 좀더 친숙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미도리 같은 친구를 만나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함께.

2009. 2. 22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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