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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약속, 만남, 여행...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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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내게 심호흡을 가르친다. '두 계단에 한번'. '정상까지 세번'... 중간에서 한번 정도 쉬고 나면 체력과 컨디션은 최악으로 치닫고. 그전까지는 호흡이 몸을 못 따라 왔다면, 이후부터는 호흡이 몸을 이끌기 시작한다.

근심의 개수만큼 계단을 오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가득 안고 오르는 산.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호흡을 펌프질하며 온갖 주문을 외워도 좀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단계에 이르면, 세상의 온갖 고뇌는 모두 땀방울처럼 떨어져나가고 머리는 멍해지며 결국 개운하게 증발한다.

그렇게 단순한, 하지만 무엇보다 격렬한 내쉬기와 들이마시기를 반복하다보면 그 단순한 진리 속에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었던 인생도 다시 한번 시작해 볼만한 간단한 무대가 되어버린다. 나는 이 맛에 산을 찾고, 산은 늘 기꺼이 이를 선물한다.

*
도봉산은 서울에서 가장 즐겨찾는 산. 도봉산은 정상에서 약 절반 가량이 돌로 된 산이다. 그래서 도봉산을 남자 산이라고도 한다. 내가 도봉산의 암석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뛰어내려올 때의 리듬감 때문이다. 큰 돌, 작은 돌 사이를 풀쩍풀쩍 뛰어넘으면 마치 두 다리를 스틱으로 산의 돌 드럼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탁타다 탁 타다다다 탁탁' 그 연주가 좋아 또 도봉산을 찾는다.


- 2008.9.13.토 -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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