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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점점 외로울 시간이 줄어든다.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작은 집을 돌보고, 남은 시간들을 쪼개어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고나면 일주일도, 한 달도 모자란 느낌이다. 그렇게 촘촘하게 채워진 한 달을 보내고 나면 문득 가슴 뜨거웠던 시절의 뜻모를 외로움이 그리워진다.

일본 소설은 정도 차는 있지만 항상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느낌'이란게 있다. 발목정도의 깊이에서 찰랑되는 애틋한 사랑, 무릎 정도의 깊이에서 첨벙되는 뜨거운 우정 같은 것들이. 하지만 홀로 한걸음 한걸음 물길을 열어가는 느낌이 대부분이다. 물의 저항으로 움직임은 부자연스럽기만 하고 진도는 더디지만, 어느덧 차분함 속에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들어간 깊이만큼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상하게도. 그리고 그 길목에서 무언가를 만난다. 본질적인, 애써 잊으려던 그 무언가를.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선생님의 외로움, 선생님과 부모님 사이에서의 '나'의 외로움. 선생님의 아내도 K도 모두 저마다의 외로움을 지닌다. 메이지 시대의 사람은 그 시대의 외로움을, 현대인은 어찌할 수 없는 현대의 외로움을 각자 끌어 안고 살아간다.

" 나는 훗날 그런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고 싶네. 나는 지금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을 참기보다 차라리 외로운 지금의 상태로 벼터가고 싶네. 자유, 독립 그리고 나 자신으로 가득 찬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가 이 외로움을 맛봐야겠지. "

- <마음> 나쓰메 소세키, 2006, 문예출판사, p.49


그 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의 외로움은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그건 선생의 외로움이 타자에 대한 개인의 외로움이 아니라, 본인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인간의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험이 너무나도 개인적이라 그의 '외로움'은 더 값지다.

그래도 운이 좋다. 선생님은 외로움이 태어난 '과거'를 펼쳐보여 달라던 '나'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나'의 시간이 선생의 과거가 시작된 시절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선생님은 장문의 유서를 통해 가감없이 모두 토해내면서 이미 멀어져버린 인간적인 자신의 일부와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재회를 통해 조금은 치유되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던 끝에 어느 날 자네는 나의 과거를 병풍처럼 자네 앞에 펼쳐 보여달라고 졸랐던 거야. 이제서야 고백하네만,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네를 인정하게 됐다네. 자네가 진정 순수하게 나의 내면으로부터 어떤 살아있는 것을 붙잡아보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야. 내 심장을 둘로갈라 뜨겁게 쏟아지는 피를 받아 마시려 했기 때문이라네.

- <마음> 나쓰메 소세키, 2006, 문예출판사,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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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숨김없이 토해내기 위해 들인 나의 노력은
한 인간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네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헛수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 p.341


그리운 나의 외로움에 안부를 전한다.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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