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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죽는 그 날까지 새로운 지(知)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을까?
그 전에 나는 과연 어떤 지(知)의 영역을 거쳐왔을까? 너무 편식하진 않았을까?


한번이라도 이런 의문에 부딪쳐 본 사람이라면 일본 지(知)의 거장 다치바나 다카시(Tachibana Takashi)를 만나볼 것을 권한다. 스스로 끊임없이 지(知)의 영역을 개척해온 다치바나는 지(知)에 대한 우리의 엉뚱한 호기심을 격려하고 더이상 흐르지 않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어제의 지식 더미에 일침을 가한다. 아래는 그의 저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2006, 청어람미디어)에서 발췌한 그의 메시지다.

호기심

지금 눈앞에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고 더욱이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교통 수단이 있다고 할 때, 경제적 이익을 고려해 그곳으로 나가는 것이 손해인지 이익인지 철저히 따져보고 이익이면 가고 손해면 가지 않겠다는 것은, 정글을 떠나지 않고 남은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고 저는 지적하였습니다. (p.27)


지(知)의 목표

의학용어 중 '소재식(所在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의 의식 수준이 점점 낮아지고 있을 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우선 소재식 검사를 합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누구입니까?", "지금은 언제입니까?라고 묻습니다.
.....
이런 소재식 검사에 이용되는 세 가지 질문은 인류가 전 역사를 통하여 찾고자 노력해 온 목표,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해 진정으로 깊이 있는 대답을 찾고자 기울여 온 노력이야말로 우리들의 과학이며, 문명을 만들어 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p.33)


고전의 울림

다시 말해, 그 저서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게 아니라 그 책 자체가 토론의 대상이 되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때의 소재로 활용되기에 적절한 책만이 결국 진정한 의미의 고전으로서 살아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p.55)


나의 서재, 고양이 빌딩

"몇 년 지나 이 그림이 지겨워지면, 이번에는 벽 한 면에 새빨간 석양 속의 구름을 그리고, 그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 고양이의 뒷모습을 그려 넣으면 어떨까?"라고 그가 제안했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 그건 그 때 가 봐야 알게될 것이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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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근 한겨레21은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지적 흐름으로 르포 문학을 재조명했다.
(관련 기사:
'모든 게 무너지는 세상')

글은 <세계를 뒤흔든 10일(존 리드)>, <쏘다니는 리포터(키슈)>, <세계의 비참(EU)>와 함께 다치바나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르포문학은 지(知)의 침투와 함께 지(知)의 확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어쩌면 블로거들의 역할도 르포문학과 일부 궤를 함께 하고 있지 않을까? 여력이 된다면 제2회 한겨레21 르포상(2008.2.26~8.31)에도 도전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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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에 이어 내가 본 두 번째 Ninomya의 만화, <주식회사 천재패밀리(Tensai Family Company, 2006), Tomoko Ninomiya>.

Ninomiya는 정말이지 '천재'라는 신인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아무리 만화라 해도 나와 상관없는 딴 세계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나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는 남다른 애정이 쏠린다. 그건 아마도 <노다메>가 음악 천재들의 이야기였던 것에 반해 <천재패밀리>는 비즈니스, 숫자, 예술, 관계, 도움(Support) 등 다양한 면에서 우리 자신들에게 친근한 천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나츠키'와 '하루'는 지금까지도 내게 말을 걸고 있다. 마치 지금의 내게 둘 중 어느 길을 택할지 묻는 것처럼...

항상 가슴에 MBA를 품고 있는 천재고교생 '나츠키'. 기업분석에서 제품기획까지 마치 숙제를 하듯 뚝딱해치우는 그에게 기업과 비즈니스란 어려운 시험문제와 같은 도전의 대상이자 삶의 이유다. 지금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글로벌 기업가 나츠키.

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언제나 조건없이 손을 내미는 '하루'. 아버지 '소스케'와 함께 발길가는 대로 살아온지 어언 10 여년, 일단 생존과 식물에 대한 조예가 확실하고 지구촌이란 말 그대로 실제 패밀리의 개념을 끝간데 없이 확장시켜 나간다. 천재 글로벌 시민이라고나 할까? ^^


이 만화의 백미는 주인공격인 나가사와, 나츠키, 하루 세 명의 친구들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만화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잠시 유보하고 한번 Ninomiya가 그리려 했던 1995년 일본의 젊은 친구들을 만나보자. 그 시절의 인물상들은 지금 한국의 젊은 친구들에게도 유효하다. 물론 내게도.


주식회사 천재패밀리 #6


'나츠키가 그림을 그리고 있잖아?!'
아니... 그림이 아냐.
'이건 제도다!'
굉장해,
잘은 모르겠지만, 나츠키가 폭풍처럼 뭔가를 마구 만들고 있어!
굉장한 힘으로, '회사'를 창조하고 있어ㅡ

                                                                                          (나가사와)

나가사와는 나츠키를 이해하게 되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자꾸 자꾸 고리를 만들어 간다ㅡ
엄청난 속도로 주위의 풍경이 변해간다!
                                                                                          (나츠키)

나츠키는 조금씩 하루로 인해 변해버린 자신의 풍경을 받아들이게 된다.

모르겠어...
하지만... 아빤 이제 자신이 '있을 장소'를 발견했어.
소중한 사람과... 가족...
전세계 어딜 가든 있는 거지.
...
처음으로 외운 주소.
                                                                                           (하루)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세계 곳곳을 누빈 하루는
아버지를 통해 더 큰 개념의 가족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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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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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동료의 추천으로 <이웃집 야마다군(となりの山田くん, 1999)>을 봤다.

뭐랄까... '이런 것이 애니다!'라는 웅변이 담긴 애니라고나 할까?
소재를 '가족'으로 접근한 것도 그렇고 캐릭터, 화법, 표현들이 하나 같이 흔하지 않은 애니였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들을 살짝 당겼다 놓고, 또 다시 당기기를 반복한다. 웃었다가 끄덕이고 또 막 웃다가 지쳤는지 조금씩 나른해진다. 술 때문이었을까? 여튼 그렇게 정말이지 이웃집 같은 일들에 조금씩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9시 뉴스만큼 중요한 것도 아닌데... 조금씩 지루해지는데... 그래도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잠시 딴 곳을 보면 들쑥날쑥 이기적인 펜터치가 튀어나온다. 분명히 3등신 캐릭터였는데 갑자기 6등신이 된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듯 2등신까지 내려간다. 전반적으로 여백이 많아 중간중간 눈이 쉬어가고, 뭔가 전달하려는 디테일한 녀석들이 알아서 눈에 들어와 주니 편하기까지 하다.

그나마 영상은 낫다. 음악은 마치 제가 애니의 주인공인냥 뻥뻥 터져나온다. '뭐 이런 배경음악이 있어?' 생각하며 음악을 쳐다보면 '그림이 맘에 안들어?'라며 뒷통수를 치는 듯한 느낌. 그러면 생각한다. 또 당했다...

마치 늘 그자리에 그렇게 언제까지나 있을 것만 같은 야마다 가족들. 전반부의 메시지도 좋았지만 특히나 후반부의 메시지나 내겐 특히 좋았다. 묵묵히 이타카를 향하고 있는 친구들과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선생님의 올해 소원, '적당'
주제가인냥 흘러나온 마지막 노래,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될대로 되라)'
DVD 표지 커버의 글귀, "치유가 아닌 위로를 주고 싶었다"


나는 누구나 이런 애니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끄적이고 나니 이런 모든 것들이 참으로 일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애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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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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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데 왜 행복하지 못한 걸까?”


지난밤 시민단체 활동가 친구들을 만나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술자리의 화두는 바로 ‘꿈으로 밥 벌어먹고 산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꿈이 순수하게 직업화되는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어쩌면 나는 그 희박한 확률을 뚫었던 사람이기도하다. 여성운동을 막연하게 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활동가를 업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었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데 인권단체에서 잠시나마 칼럼을 쓸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 관심분야를 마음껏 취재하며 사회의 부조리도 고발 할 수 있는 ‘기자’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지난밤 만났던 활동가 친구들도 내 생각에는 모두 행복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한 친구는 현재 상황이 지긋지긋하다며 눈물을 흘렸고. 또 한친구는 대안만 있다면 어디로든 뛰쳐 가고 싶다고 했으며, 나 역시 술잔을 기울이며 한숨만 내쉬었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그 대표적인 기준이 ‘꿈, 비전, 보상, 안정성, 여유’ 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직장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중요시 하는 가치를 충족하면 다른 가치는 어느 정도 묵인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가치의 결핍을 감수하고 자신이 고수했던 가치에 위협을 받는 순간 그 사람은 직장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다.


나의 활동가 친구들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보수를 감수하고 꿈을 믿고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앞서 제시했던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중 가장 명확하지 않는 기준이 바로 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도 갈망했던  꿈이 직업적으로 현실화되었을 때 그것이 자신이 꿨던 꿈인지를 다시금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의심 속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아닌가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나는 행복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이 꿈꿔왔던 일인가를 의심하며 엇나가있을 때는 조율하려고 부단히 애쓴다.


‘프로네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철학적 개념인데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아는 지혜’다. 나는 꿈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풍만한 프로네시스로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친구들 너무 속상해하진 말게. 우린 앞으로도 꾸준히 우리의 행복을 의심하며 행복해 지려고 노력할테니...



#에필로그..

안정성과 여유로움 때문에 공무원이 된 친구, 영화감독이 너무되고 싶어 학교까지 때려치고 충무로로 간 친구, 20년동안 모 방송사 예능 피디를 꿈꾸다 몇 천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 방송사 예능 피디가 된 친구, 돈 많이 벌겠다고 바득바득 이를 갈며 대기업에 간 친구. 자신이 중요시 한 가치로 20대 초반에 직업을 선택한 나의 친구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누구도 100%행복하지 못하며, 몇 번쯤은 직장을 관둘 생각을 했고, 개중엔 정말 직장을 관두었다.


이래서 사람은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갑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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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0. 기업의 사회공헌팀에 몸담고 계신 분과 우연히 술잔을 기울일 자리가 있었다. 국내 NGO, CSR 프로그램, 사회적 기업을 넘나 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막 잔을 기울일 무렵, 그분이 사회적기업에 대한 의미심장한 말씀을 주셨다.

"아직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사회적기업은 시기상조입니다. 아직 개념조차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이런 식으로 사회적기업을 장려한다면 더더욱 위험합니다. 어쩌면 공산주의 기업과도 같은 괴물이 나올지도 몰라요."

100% 공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정부의 '사회적기업' 육성 움직임에 대해 조금, 아니 꽤 회의적이다.

내가 '사회적 기업'에 특별한 애정을 쏟는 이유는 상당수의 사회적기업이 '자립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적 기업이 '사회'와 '기업' 둘 중에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마땅히 '기업'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란 비즈니스를 근간으로 한다. 거기엔 상품이 있고, 거래가 있으며, 수익모델이 있다. 나머지는 부차적이다. 만약 기업이 스스로의 비즈니스 모델로 우뚝서지 못하면 이미 기업이라 할 수 없다. 사회적기업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만 한다. 때문에 NGO도 자립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다면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만 '자립 가능성'해서는 사회적기업의 의미가 없다. '자립 가능성'이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는 개인, 단체, 지역까지 확장되야만 비로소 사회적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책임은 아직 조직보다는 개인의 비전과 역량에 많이 좌우되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사회적기업가'야 말로 사회적기업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가'가 '사회적기업'을 만들면, 그 '사회적기업'은 또다른 '사회적기업가'들을 만들어 낸다. 내겐 이 선순환 구조가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다.


04.21. Atlas Service Corps라는 소셜 벤처(Social Venture)가 있다. Atlas Service Corps은 국제적인 파트너십이 개도국의 발전으로 연결된다는 확신을 갖고 개도국의 경력있는 사회 활동가를 미국 시민사회와 교류하는 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모든 활동은 사회적기업가를 양성을 시작으로, 국가간의 교류를 활성화 시키고, 궁극적으로 UN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이슈해결에 이바지 한다는 큰 그림에 기초하고 있다.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다.

1. Apply Fellowship (from Global South)
2. Learn Skills (in USA Citizen Sector)
3. Share Knowledge (in USA Citizen Sector)
4. Come Home to Strengthen Their Domestic Citizen Sector

개도국의 활동가와 예비 사회적기업가들이 1년간 미국 등 선진국 시민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네트워크, 모금, 마케팅, IT 기술... 그것이 무엇이든 개도국의 시민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줄 강력하고 구체적인 무엇이 될 것이다.

나는 Atlas Service Corps를 포함해 사회적기업들이 사회와 개인들에게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을 이루는 '적절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적절함'은 해당 사회적 기업가가 처한 상황의 특수성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상에서 현실과 융합시킬 수 있는 창의성과 응용력, 그리고 남다른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내의 사회적기업들에도 저마다의 '적절한 기술'이 내재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다.




Altas Service Corps.
http://www.atlascorps.org/appl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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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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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내 생애 두 번째 보험에 가입했다.

보험이란 참 묘하다. 사실 나 혼자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보험따위 필요없다. 죽고 난 다음의 돈이 무슨 소용있으랴. 혹 불의의 사고가 찾아온다해도 착실히 병원왕래를 하며 멍하니 차례를 기다릴 성격도 아니다. 그래도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며, 너는 혼자가 아니라며 말해오면... 아뿔싸. 땅 위의 그림자가 더 짙어진다. 그리고는 '더이상 가입하지 않을 테다...' 되뇌인다. 그래 보험따위는


3.31. Nicholas Kristof는 칼럼 '조금만 더 머리를(With a Few More Brains)'에서 '지적 계정(Intellectual Accounts)'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단순히 재정 계정(Financial Accounts)의 숫자로 좌우되는게 아니라고 말하는 Kristof. 그는 Intellectual Accounts의 부족은 십년 후의 경쟁력은 커녕, 현재 미국사회의 말도 안돼는 음모론을 양산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교육, 그리고 지적 자산을 당당하게 여길 수 있는 정치문화. 공교롭게도 같은 날 ABC News는 미국고등학교 졸업실태 통계를 발표했다.

......
Our competitiveness as a nation in coming decades will be determined not only by our financial accounts but also by our intellectual accounts. In that respect, we’re at a disadvantage, particularly vis-à-vis East Asia with its focus on education.

From Singapore to Japan, politicians pretend to be smarter and better- educated than they actually are, because intellect is an asset at the polls. In the United States, almost alone among developed countries, politicians pretend to be less worldly and erudite than they are (Bill Clinton was masterful at hiding a brilliant mind behind folksy Arkansas sayings about pigs).
......
                                                          'With a Few More Brains' Nicholas Kristof



3.31. 1년 반만에 SSC 12기 모임에 참석했다.

어렵기만한 '과학'을 어떻게 하면 더 쉽고 친근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모임. 한 멤버의 소개로 Oroom Gallery란 곳을 알게 되었고, 드높게 노랗던 천장이 한 주의 작은 쉼표가 되어주었다. 수학, 역사, 헬스케어, IT...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만나 각자의 관심사를 함께 섞다보니 묘한 지적 상쾌함이 느껴졌다. Kristof가 말한 Intellectual Accounts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4.2. 기다리고 기다렸던 The Economist가 배달됐다.

이로써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그럭저럭 균형감있는 Intellectual Accounts 조각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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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tyle이라는 팀블로그에서 '온라인 책 배틀'을 시작했다.

Book Style은 단순하다면 단순할 수 있는 범국민 취미 독서를, 뼈와 살을 발라낸 서평으로 발전시키고, 보다 건전한 공유를 위한 서평논쟁으로까지 승화시킨 책서평 전문 팀블로그.

참가자에겐 책도 무료로 보내준다고 한다. 이번엔 늦었지만 다음엔 기필코!!
발상이 경쾌하다!


1. 신청 방식 : 이 포스트의 댓글로 신청
2. 신청 양식 : 필명, 블로그 주소, 자신이 기존에 작성한 서평 주소
3. 신청 기간 : 2008년 3월 17일부터 3월 21일
4. 선정 기준
  - 블로그 활동이 왕성하신 분
  - 기존에 서평을 많이 작성하셨던 분
  - 그러나 이번에 신청하려고 재미있고 강력한 서평을 새로 쓰신 분
  - 상대방의 서평을 읽고 단순히 감정적이 아닌 논리적이고 공격하실 수 있는 분
5. 선정 인원 : 15명
6. 책 배포    : 24일까지 선정, 25일 책 배송 시작
7. 서평 배틀 : 25일부터 이 포스트에 트랙백으로 서평 포스트
                   물론 서로 다른 사람의 서평의 트랙백으로도 전투 ~~

이번에 책 배틀에 선정한 책은 동아일보사의 "마이크로비지니스"라는 책입니다.


온라인 책 배틀에 참여하시면 책을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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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ookstyle.kr/blog_post_71.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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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일), 대한민국 블로거컨퍼런스 행사에 참석했다.
다음과 네이버가 주최하고 소프트뱅크가 주관한 블로거 대상의 국내 첫 컨퍼런스.

기대가 컸던만큼 채우지 못한 마음도 그에 못지않게 컸지만... 그래도 행사기획자들의 행사 컨셉과 철학이 담긴 행사였던만큼 울림이 있었던 내용들도 많이 있었다. 그 중 두번째 기조연설을 들려주신 류춘수 건축가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장인정신'을 오늘 공유할까 한다.


"기둥의 길이는 모두 다르다"

류춘수 선생님은 건축이란 땅의 형태에 맞춰 그 형태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이라 강조한다. 그가 직접 설계한 대관령 휴게실 도면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둥에 대한 잘못된 믿음 중 하나는 '모든 기둥의 길이가 같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둥이란 이렇듯 발딪는 땅의 형태에 따라 저마다 다른 길이를 갖게 됩니다."

아마도 이 시점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천명 가까운 청중이 그의 이야기에 두 발을 모두 들여 놓게 된 것은. 그건 아마도 우리 모두가 '다른 길이의 다리' 그 자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선생님은 거듭 강조한다. 건축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이웃에 대한,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그래서 이야기의 시작처럼 끝도 닮은꼴 메시지로 정리한다.

"'Fit for Given ConText of Time & Place', 해당 지역 법규, 생활패턴, 자연환경, 역사, 시간... 건축은 주어진 환경조건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게 일반 예술과 다른 점입니다."


"올림픽 이후에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건축가의 '공간성' 개념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간성' 개념. 88 서울올림픽 경기장/공원,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등 류춘수 선생님은 건축물에 굵직한 대형 행사와 그 이전이후의 일상적 기능들이 담겨야 한다고 한다.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설계시에는 이런 고민들이 더욱 치밀하게 반영된다. 천장의 구조물에 고드름이 맺히지 않는 각도는?, 화재시 대피경로는? 기자회견은? 스포츠경기 외 다른 행사에는?

......

결국 류춘수 선생님은 블로그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건축가의 사고방식이란 어떤 걸까 궁금해졌다. 마치 물리학자처럼 시공간의 좌표를 늘이고 줄였으며, 수학자처럼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치밀한 사고방식... 

소프트뱅크 관계자는 급성장하는 한국의 블로그 문화에 '철학과 깊이'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맞는 이야기다. 블로거들도 시공간의 좌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내가 블로거컨퍼런스에 참석했던 이유 중 하나도 과연 한국은 어떤 블로그들이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어떤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는가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참석하자 막연한 마음은 되리어 길을 잃고 말았다. 중고등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단순한 일상기록에서 전문 리포팅까지... 블로그는 여전히 하나로 정의되지 않은채 각각의 길이를 가진 기둥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면 이런 대규모의 컨퍼런스는 어떤 블로거의 마음도 만족시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 내가 만난 분 중에는 이제 막 블로그의 세계를 두드리며 끝없는 호기심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도 꽤 많았다. 누군가에겐 블로그가 이미 익숙하고 진부한 것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새로운 가능성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블로그는 하나둘씩 탄생하고 있다.

블로거컨퍼런스는 앞으로도 필요하다. 어느 블로거가 말했다. "블로거의 도그마(DOGMA, 교리)를 경계해야 한다." 그 말 그대로 늘 새로움과 따끔한 조언들로 블로거들을 자극하고 오늘과 어제의 블로거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들이 많이 열렸으면 한다.


*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 '건축가적 사고'에 대해 추천해 줄만한 좋은 서적이나 자료가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 아래 한사님의 블로그도 류춘수 선생님의 건축 이야기 후기를 담고있다. 깊이있는 후기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는 글이다.
http://blog.daum.net/osaekri/14205591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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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회'가 우습게도,
시스템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이번엔 '사회' 속에서
부조리와 불평등이 생기기 시작하는거야.
'빈부의차', '신분의차', '재능의차', '외모의차', '인종차별'...
세상의 잔혹함과 부조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만들어낸 '사회'가,
다시 부조리를 낳는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사회가 된 거지.

물론 가난해도 즐겁고 평화롭게 살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불평등과 사람들의 불만을 흡수하는 시스템...
예를들어 '부조리한 죽음'이더라도 납득할만한 이유가 필요하지.
그 역할을 계속 담당해온 것이, 바로 종교였어.
......

진보는 인간의 정신과 문화, 기술을 높여가지만
그건 사회의 엘리트들과 상류층이 담당하는거야
그에 반해 생물의 진화는,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고, 주류에서 제외되고, 변두리로 쫓겨난 약자들의
생존의 수단이지.

난 지금까지 내내 이 '세상'이 '잔혹하고', '부조리'하다고 말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물은, 필사적으로 '진화'를 하지.
또한 동시에 이 '세상'은 다양한 '풍요'와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거야.

                                                        - EDEN #15 (Hiroki Endo, 2008, 학산문화사)


'진보'와 '진화'에 대한 철학과 스케일이 눈부신 만화책.
Olivia Judson이 EDEN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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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of the microscope is not that it makes little creatures larger, but that it makes a large one smaller. We are too big for our world. The microscope takes us down from our proud and lonely immensity and makes us, for a time, fellow citizens with the great majority of living things. It lets us share with them the strange and beautiful world where a meter amounts to a mile and yesterday was years ago.

     - 'Mites of Moths and Butterflies' 中 (Asher E. Treat, 1975, Cornell Univ. Press)

* 이 구절은 Olivia Judson의 'Pineapple Dreams (2008.03.18)'에서 인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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