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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약속, 만남, 여행...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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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찾아 온 29 우울증을 달래려고 시작해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30 생일을 넘겨 버린 <타이거&드래곤>

처음엔 웃음 잃은 야쿠자 고타로의 기백에 발동 걸렸다가
결국엔 거부할 수 없는 중년 돈베이의 표정 연기에 중독되어 버린 <타이거 앤 드래곤>

라쿠고를 통해 일본의 어제(돈베이)와 일본의 오늘(고타로)을 합주하고
스승과 제자, 가족과 친구와 같은 평범한 가치를 반짝반짝 닦아낸 <Tiger & Dragon>

나중에 또다시 뜻모를 우울증이 찾아온다면 꼭 한번 다시 보고 싶다.
그 중에서도 3화 '차예법', 4화 '콘스케 쵸칭'은 특히!! ^^


"타이거, 타이거, 지렛 타이거~~!!" (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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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계십니까?" (4화 '콘스케 쵸칭'의 돈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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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았던 수업료 상환 의식, 그리고 오므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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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관객이자 늘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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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이며 그 이전에 한 가족인 하야시아떼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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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로쿠가를 마칠때마다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5초간의 긴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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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생이란... 걸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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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이치로가 쿡 찔러주는 소설쓰는 방법 몇가지
이제,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다카하시 겐이치로, 2008, 웅진지식하우스, 양윤복


0_ 소설이란

소설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광대한 평원에 외따로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슬며시 도망쳐 나온 소년 같은 것이 아닐까요.  p.19

"인간의 한계란 언어의 한계이며, 그것은 문학의 한계 그 자체다. - 밀란 쿤테라"
소설을 쓴다는 것은 저 너머에 가고 싶다는 인간의 근원적 바람 속에 그 단초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p.20

모든 소설은(넓게는 문학은) '웃고 있는' '죄다들'쪽이 틀린 건 아닌가 하는 고독한 의심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라는 점이.  p.24

8_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다. 붙잡는 것이다.  p.72

"이렇게 나는 희한한 것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내 방 바닥에 드러누워 심심풀이 삼아 그런 물건들을 위에서가 아니라 아래에서 관찰했습니다. 그러다 정말 놀랍게도 의자 다리에 종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게요, 마치 흑인이나 밤색 양말을 신은 초등학생 다리처럼 진짜로 탱탱한, 짙은 색깔의 종아리였습니다."
- <에밀과 탐정들> p.76

10_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본다. 혹은 세계가 완전히 다르게 보일때까지 기다린다.  p.72

 

16_ 소설을 아기가 엄마의 말을 흉내 내듯이 흉내 낸다.

나는 소설은 다양한 언어와, 그렇게 똑같이 면면히 이어지고 조합되고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유전자의 무한한 이어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121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캐치볼.
이 아버지는 결코 느린 공을 던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느린 공으로는 훈련이 되지 않으니까요.
아버지는 던집니다. 이 소년이 아슬아슬하게 붙잡을 수 있을 정도의 공을.
그리고 소년은 그 공을 다시 던집니다. 소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공을.  p.149

오래된 벽화 속에, 더러움을 타고 얼룩이 진 오래된 책 속에 갇혀 있던 옛사람들.
그들과 놀고 싶다고 그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번역을 했습니다.
일본어에서 일본어로의 번역,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로의 번역,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건 옳아요.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건 '고전을 소설로 번역'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p.154

19_ 소설은 사진 옆에, 만화 옆에 그리고 다양한 곳에서 돌연 태어난다.  p.157




"가볍게, 당당하게, 무엇보다 재치있게"

만약 내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저 단어들로 시작해서, 저 단어들로 끝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겐이치로는 바람이 모두 빠져나가 쪼글쪼글해진 풍선 속에 물을 담아줬다. 손 안에서 망캉거리는 느낌이 부드럽다. 가볍게 던지니 아슬아슬하게 받아넘긴다. 하나 둘 하나둘 핫둘, 조금씩 빨라지는 물풍선. 철퍽! 결국 몇차례를 넘기지 못하고 던지려던 내 손에서 그만 터져버리고 만다. 팔을 타고 겨드랑이로, 겨드랑이에서 옆구리로 물이 스르륵 흘러내려온다. 킥. 우습다. 푸하 시원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약간의 즐거운 거짓말을 섞어"
(겐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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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 운명運命이란 말을 생각해보았나?
다 쓰는 말이니 모를 리 없겠네만 운명이란 명을 나르는 것,
즉 자기의 목숨을 나르는 것이지.
자네가 자네의 몸을 지금 이 순간 이곳으로 끌고 온 것,
이것이 운명일세.
그러므로 운명이란 자기 자신에게 어떤 경험을 시켜주느냐 하는 것일세.
내가 사람들을 도와주러 찾아 다닌 게 아니라
내게 경험을 시켜주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뿐이네.
"
- <소설 토정비결> 이재운, 1991, 해냄


보시오. 고려왕조도 조선왕조도 마치 자신들이 세상을 바꿔온 양 얘기하오. 그러나 왕조가 대체 세상의 변화에 무슨 일을 했소? 권력을 잡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을 뿐이오. 왕조는 바뀌어도 백성들이 살아가는 꼴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소.
...

그렇다면 사람들만을 보아서는 안될 것이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살아가는지, 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시오. 금산에서 인삼이 나고, 한산의 모시가 유명하고, 전주에서는 한지가 많이 나오. 이천에서는 좋은 도자기가 많이 나고, 강진에서는 백자가 나지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저절도 나는 것이 아니라 땅을 보아 나는 것이오. 물산도 이럴진대 사람인들 안 그렇겠소? 그 땅을 보면 인물도 볼 수 있을 것이오. 거기에 아마도 이 선비가 찾는 답이 있을 거외다.
...

돈은 그저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돈을 잡아 가두거나 숨겨 두려고 하면 돈은 반드시 빠져나갑니다. 돈이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썩습니다. 돈은 사람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니 써야합니다. 그러니 돈이 잠시만 나를 스쳐지나가도록 하십시오. 십년동안 열심히 일해서 얼마를 모아야지 하는 어리석은 계획은 세우지 마십시오.


"매점매석이나 배워가지고는 쓸데가 없네."
 화담이 다시 말을 이었다.
"물산의 흐름을 바로 잡는 것이 경제라 하였습니다."
"그건 장사꾼의 얘기, 도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네."
"그럼 뭐라고 합니까?"
"마음 장사를 해야지."
"마음 장사라구요?"

"제 마음을 들여다보아도 맺힌 곳이 있고, 풀린 곳이 있다네. 
 네는 마음의 장사꾼이 되게.
 그래서 용기가 나지 않는 땅에는 용기를 북돋아 주고, 지혜가 필요한 땅에는 지혜를 주게.
 그러려면 어떤 땅에 뭐가 많고 부족한가를 알아야 하네."

2001. 4. 15



어떻게 하다보니 비즈니스 세계에 인연을 맺게 됐다. 비즈니스 세계는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를 거래하는 곳. 가치는 다양하다. TV나 노트북같은 제품에서 예술작품, 뉴스, 전문정보 등에 이르기까지. 가끔 생각한다. 토정비결에서 화담이 말한 '마음 장사'란 무엇일까하고. 내가 관심 있는 NGO나 사회적기업들은 그것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곳 블로그세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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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아름다와.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에..."
...
"사막은 아름다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지..."
어린왕자가 말했다.

                                                                - <어린왕자 The Little Prince> 생 텍쥐베리, 1973, 문예출판사, 전성자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되뇌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란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게 되는 거지.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는 되뇌었다.


하늘을 바라보라. 생각해 보라.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한 마리 양이 한 송이 장미꽃을 먹었느냐 먹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천지가 온통 뒤바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다는 걸 어른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001. 4. 1




피천득의 인연과 생 텍쥐베리의 어린왕자는 닮았다. 둘다 인연과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다. 피천득은 뜨개질로 인연을 이야기하고, 어린왕자는 길들이기로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관계이건 그것이 시작되면 우리에겐 그것을 지속시킬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예전의 나는 모든 관계에 책임감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자연스럽게 알게되었다. 책임이라는 것의 무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무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시간의 흐름속에 나아가고, 변화한다. 관계의 실타래는 갈래갈래 늘어나기도 하고, 어쩔도리 없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전진해야 한다. 예고 없는 상실이 찾아왔다고 그 자리에 망연자실 앉아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전진이다. 일단 가보는 거다. 한 쪽 눈에 어린왕자의 애정을 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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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가?

"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유를 찾는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
먼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
난 이 사실을 20년 동안 그대의 귀에 대고 속삭여 왔네. 바로 곁에서 말야.
그대가 언제나 자유로운 정신에 머물기를 바라네.
그것 밖에는 다른 해답이 없지.
"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1997, 열림원

2001. 3. 24




시인 류시화는 끊임없이 귓가에 속삭인다. 그대 자유로우라고. 그는 떠남이 자유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기다운 것,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때문에 자신을 알기 위해 간혹 떠나라고 조언하기도 하고, 지금 현재에 충실하하고도 말한다.

류시화 덕분에 인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인도에 다녀왔다. 작은 만남과 우연으로 인도는 내 인생의 키워드 중 하나가 됐다. 인도 그 자체가 무엇이든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인도를 찾는다. 그런 여행은 흔치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몇몇의 친구와 후배들은 류시화를 만나 인도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인도를 만나고 나 자신을 만났듯이 그들도 만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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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사람들은 이제껏 열등한 것으로 간주했던 존재들이 실제로는 자기들과 대단히 비슷해서 존중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동류同類>의 개념을 확장해서 거기에 새로운 범주를 포함시킨다. 그렇게 되면 그 존재들이 어떤 제한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진보의 한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 <천사들의 제국> 베르나르 베르베르, 2000, 열린책들, 이세욱


위반자

사회는 위반자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희생양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위반자들은 적발되는 즉시 기소되고 제외된다. 하지만 사회가 진보하면 할수록, 사회의 독이 되는 요소를 조심스럽게 관리함을써 스스로를 위한 항체를 발달시킨다. 그럼으로써 사회는 갈수록 자기 앞에 나타나는 장애물을 점점 더 차분하게 뛰어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 뒷날 규범적인 사람들과 위반자들의 중간쯤에 위치한 <사이비 위반자들>이 똑같은 위반을 되풀이 하더라도, 그 위반은 한결 순화되고 견딜만한 것이 되어 사회 체제 속에 편입된다.


무기

사랑을 검으로, 유머를 방패로.

2001. 1. 4



미카엘과 라울은 천사가 되기 위해 인간에게 당위인 진보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진보를 위해 위반자의 길을 택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에 이어 현재 <신>을 집필 중이다. 그의 상상력에 열광하던 시절도 이미 빛바랬지만, 베르베르가 자신의 세계를 펼쳐나가며 풀어가는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개념들은 오늘날에도 여진히 그 울림을 간직하고 있다. 관용과 위반자는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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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 <인연> 피천득, 1996, 샘터


'나는 말주변이 없어'하는 말은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 둔한 사람이다'하는 소리다. 화제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 경험의 빈곤, 감정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솜씨가 없다는 것은 그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 방식에 있다.


나도 한 때는 백화나무를 타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꿈꿀 때가 있습니다.
내가 심려心慮에 지쳤을 때
그리고 인생이 길없는 숲속과 너무나 같을 때 얼굴이
달고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간지러울 때 내 눈 하나가
작은 나무 가지에 스쳐 눈물이 흐를 때
나는 잠시 세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새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운명이 나를 잘못 이해하고
반만 내 원願을 들어주어
나를 데려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더 좋은 세상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 <자작나무> 中, 로버트 프로스트


나는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 문학은 낯익은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여 나를 풍유하게 하여 준다. 구름과 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눈, 비, 바람, 가지가지의 자연현상을 허술하게 놓쳐버리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여 준다. 도연명을 읽은 뒤에 국화를 더 좋아하게 되고 워즈워스의 시를 왼 뒤에 수선화를 더 아끼게 되었다. 운곡의 <눈 맞아 휘어진 대>를 알기에 대나무를 다시 보게 되고, 백화나무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시인 프로스트를 알 후부터이다.



知에 대한 책임과 그것들과의 가볍고도 깊은 조우. 엄마를 사랑하고 딸을 키우는 그.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아들이고 싶다는 그.  인과와 인연으로 하나하나 실타래를 만들어 가는 인생선배 피천득을 만났다. 그 밖에도 피천득을 통해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도산, 치웅, 프로스트, 테니슨, 키이츠...

200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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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치러야 할 때에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바람에 그 고지서가 이제야 돌아온 거예요."
- 나오코

그 장소에서 죽음이란 삶을 결말 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거기에선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나오코는 죽음을 안은채 거기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와타나베, 그건 그저 죽음일 뿐이야. 마음쓰지 말아요." 라고


"와타나베, 영어의 가정법 현재와 가정법 과거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요?"
- 미도리

내가 나오코에 대해 느끼는 것은 무섭게 조용하고 부드럽고 맑은 애정이지만, 미도리에 대해선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서 걸어가고, 호흡을 하고, 고동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뒤흔듭니다. 저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몹시 혼란스러워져 있습니다.


"졸려?" 하고 내가 물었다.
"약간 수면 부족인가 봐요. 어째 좀 바빠서요. 하지만 괜찮아요. 걱정말아요... 많이 기다렸죠?"
"뭐, 괜찮아. 난 시간이 너무 많아 죽을 지경이니까."
"그렇게 한가해요?"
"내 시간을 좀 줘서, 그 속에 미도리를 잠자게 해줬으면 싶을 정도지"

미도리는 턱을 고인채 생긋 웃고는 내 얼굴을 보았다.
"선배, 참 친절한 사람이에요."
- 와타나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한다.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딘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공간의 한가운데에서 미도리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동시에 하나의 시대를 감싸고 있었던 空氣라는 것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自我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나가 그 싸움에서 살아 남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긴 하지만.

- <상실의 시대 Norwegian Wood> 무라카미 하루키, 1998, 문학사상사, 유유정

200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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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백호에게 선물 받았던 책. 그리고 문학 속에서 미술작품의 길을 찾던 펜팔 친구 덕분에 시작하게 된 책. 길고 지루한 군생활처럼 꽤나 오래 잡고 씨름했던 책.

덕분에 하루키란 일본 작가를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익숙해진 죽음을 좀더 친숙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미도리 같은 친구를 만나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함께.

2009.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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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체로 슬픔이나 외로움을 꽤 즐기는 편이지만, 그도 몇날 며칠이나 지속된다면 대책이 없다. 별 도움은 안되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만의 대처법 몇가지를 공유한다.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 방법은 저마다이겠지만


1. 걷는다. 정처없이

그러다 보면 해가 지고, 다리가 아프고, 허기 지고... 모든 것을 탈진해버린 뒤 전혀 뜻밖의 멋진 음식점, 편안한 찻집, 정취 가득한 골목, 선물 같은 나만의 공간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2. 목소리 듣는다. 친구들의

어떻게 지내는지. 오랜 친구들은 지금은 각자의 길위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러다 운이 좋으면 캔맥주 한잔 할수도 있다.


3. 가슴으로 읽는다. 시를

시를 읽으면 같은 일상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마치 의자의 종아리처럼. 같은 길도, 자잘한 물건 하나하나에도 새로운 마음이 담긴다.


4. 밤기차에 오른다. 지갑이 허락하는

아무런 계획도, 정보도 없이 낯선땅에 발을 내딪으면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맛있는 떡볶이와 오뎅도. 하나하나 새롭게 묻는다. 내 앞의 길에 대해.


5. 유쾌한 일드를 본다

최근 깨달음 중의 하나. 일본영화는 시적이고 만화같은 캐릭터가 많다. 최근 알게 된 '타이거 앤 드래곤(Tiger & Dragon)'은 마치 겐이치로가 그랬듯이 멋지게 고전 라쿠고를 재해석한다. 겐이치로가 말한 것처럼 과거에서 현재로의 번역이 아니라, 고전을 소설로. 크게 웃으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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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의 마지막 날, 나는 무덤덤했다.
결혼에, 회사를 오고가던 나날들 속에 나의 20대 마지막 달, 마지막 주, 마지막 하루가 소리소문 없이 쓰윽 지나갔다. 그 후로 별거 아니라고 별 일 없었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내왔는데 그게 아닌가보다. 알 수없는 허전함과 상실감이 있다. 내 안에.

오늘 같이 생각없이 내 이야기를 마구 끄적일 수 있는 밤은 많지 않다. 이 짧은 시간을 빌어 두서없지만 내 20대에 마지막 편지를 보낼까 한다. 나의 20대를 수놓았던 파편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어 보며...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느니
사랑을 하고 잃은 것은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 낫다
- 테니슨

20대 내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 건 테니슨이 아니었을까. 20대, 후회없이 사랑했다. 잠시나마 신마저도 사랑해보려 했었다. 사랑에 뛰어 들고, 잃고, 그래도 다시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 인생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로 변했다. 50대 50이라면 주저할 필요없다. 일단 두드리는 거다.  


사람들한테 칭찬받지 못한 대도 상관없어!
언제든 웃을 수 있는 강인함을 잊지 말거라
- One Piece #9

군생활엔 원칙이 필요했다. 나의 원칙만을 고집할 수 없는 그곳, 타인의 실수까지 나의 책임이 되는 그곳에서 나는 나 스스로 당당할 수 있어야 했다. 죽을 잘못을 한 것이 아니라면 뭐든. 이때 원피스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내 20대의 수많은 선택과 결과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무엇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
'무엇인가를 이룩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라
- 아난 (태국 前총리)

내 첫 유서는 무릎 수술로 2달간 입원해 있었던 21살에 쓰여졌다. 그 때 우연히 TV를 통해 들었던 아난 前총리의 인생관은 나를 송두리채 뒤바꿔 놓았다. 난 욕심이 많다. 하지만 내 인생 진로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순간이면 늘 나는 아난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과거를 되살리지 않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현재를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 냉정과 열정사이 (츠지 히토나리)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내게도 후회라는게 찾아왔다. 내 이기적인 선택은 나는 물론, 내 주위의 사람들도 많이 아프게 했다. 그 때는 4계절이 모두 가을 같았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내게 현재의 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었다.


눈물로 씻은 눈만이 세상을 볼 수 있다.
- 나는 희망의 증거다 (서진규)

자원봉사는 내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다. 사회인이랍시고 자원봉사와는 담을 쌓고 지낸지도 오래지만, 자원봉사는 내가 사회와 관계를 맺는 나만의 방식이다. 20대 자원봉사는 육체노동이 거의 전부였지만 30대는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돌아감을 곧음으로 여기고, 근심을 이득으로 삼는다.
- 손자

하나 같이 안풀리던 시절도 있었다. 어차피 취업도 잘 되지 않았던 나는 마침 배워온 전공 속의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었다. 그렇게 가볍게 저질렀던 사건이 내 인생에 특별한 만남을 선물했다.


한 번쯤은 네가 쌓아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대라는 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리셋할 수 있다는 것을. 우여곡절도 많았고, 작심삼일 투성이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큰 뜻이 없었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좌충우돌했던 20대 덕분에 이렇게 많은 든든한 조언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개의 인생 키워드도 어렴풋하게나마 조금 알 게 되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땅
흰 얼음산은 바다로 무너져 내리고
자연의 소리만이 대지를 채우는 곳
밤에는 별이 너무 많아
목이 아파 그 숫자를 셀 수도 없는 곳
그런 곳을 상상해 보자

....

그런 곳을 상상해 보자
너무도 넓고 너무도 순수한 곳
공기가 너무 맑아 숨쉬기조차 벅찬 곳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대지
하얗게 빛나는 밤
우리 그런 곳을 상상해보자
- 누구의 것도 아닌 땅 (캐롤 포먼)


늘 여행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다...)

Posted by 고래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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